모험의 왕과 코코넛의 귀족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215
서정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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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너무 호기심이 간 탓에 책을 샀다. 나는 요즘 시를 즐겨 읽는다. 그러나 요즘 시는 가끔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서정학의 시가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어 좋았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진지해지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다. 매일, 매일을 진지한 얼굴을 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내 생각도 그렇다. 지금까지 시집의 모습은 삶의 철학만을 강조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모험의 왕과 코코넛의 귀족들> 삶의 진지한 부분보다는 삶의 일상에 시선을 두고 있다. 특히 나는 '완벽한 평일 오후의 동물원'이란 시를 좋아한다. 이 시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동물원의 모습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다. 동물이 아닌 사람을 위한 동물원이기에 평일의 동물원은 별 가치가 없다.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었으면 한다. 작가와 시를 배우는 사람들과 시를 비평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좀 더 많은 이들이 시를 읽고 느꼈으면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 적응하기도 힘들다. 한 마디로 시를 읽을 시간은 없다. 그러기 위해선 좀 더 가벼울 필요가 있다. 단순히 주제가 가볍다기 보다는 소재와 방식에서 친숙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정학의 시집은 호기심이 간다. 비록 삶의 희망보다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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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꽃 - 1999년 제3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하성란 외 / 조선일보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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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말투, 옷차림, 성격, 토정비결 아니면 느낌 우리는 여러 가지 데이터로 그 또는 그녀를 평가한다. 물론 평가라는 말이 직접적인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그 또는 그녀에 대해 물어봤을 때 어떤 사람인 것 같다는 말 정도는 하게 된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일까,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왜 이리 많고, 사람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어쩜 이렇게 다양할까.

여기서 남자는 그녀를 알기 위한 데이터로 그녀가 버린 쓰레기를 선택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일상 중 하나를 파헤친 것 뿐인데, 작가의 이런 설정은 낯설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판단 기준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이제 그가 그녀를 파악하는 수단에서 벗어나 독자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회를 재검토 하는 새로운 통로가 된다.

…애매모호한 설문지보다는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이 더욱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쓰레기야말로 숨은 그림 찾기의 모범답안이다….

작가의 말처럼 들리는 이 부분은 사회의 모습으로 돌이켜 보았을 때 우울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완전하게 매만져진 현실의 참을 입증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버린 것들, 그 폐기물들이다. 작가 하성란은 이 차갑고 냄새나는 것들에서 현대를 본다. '마이크로적 묘사 '라고 불릴 만큼 냉정하고 꼼꼼하게 대상의 내부와 외부를 관찰하는 것이다. 마치 현미경의 렌즈로 사람의 피부를 들여다 보는 것처럼 작가의 눈으로 보는 대상은 낯설고 추한 모습으로 변한다.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진실은 쓰레기 봉투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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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원 창비시선 185
김기택 지음 / 창비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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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IMF를 겪고 구조조정으로 많은 아버지들이 해고를 당할 무렵, 직장인들 사이에선 이런 유행어가 돌았다. 휴가 갔다오면 자신의 책상이 없어진다느니, 그래서 책상을 가지고 출퇴근을 해야 한다느니…허허허 웃기다고 하기엔 씁쓸하게 들리는 유머 한마디. 뭐 지금이라고 구조조정의 악몽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김기택의 시를 보니 한 숨을 내쉬던 직장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김기택의 시집 [사무원]은 이런 부분에서 시선을 끈다. 당시 사회를 살던 일명 안돼 보이는 사람들의 내부를 관찰하여 까발리는 것, 동정이나 연민을 제거하고 철저하게 그들의 모습을 내보이는 것. 그래서 읽다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차가운 시선. [사무원]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가 1999년이니, 당시의 우울한 상황과 너무나 어울리는 시집이 아닐까.

그 중 <화석>이라는 시는 일에만 매달리는 직장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화석처럼 굳어가는 사무원의 모습을 거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정보처리가 빨라진 사회이니 만큼 개인이 처리할 일의 양은 많아지고 처리 속도는 빨라졌다. 그러니 거북으로 설정된 사무원에게는 토끼와의 경주처럼 땀빼는 게 회사일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코미디일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회사일에만 매달린 회사원은 화석처럼 굳어져서 부서지고 만다. 여기서도 화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 감정의 동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읽으면서 나는 속상했다. 거북등의 회사원에게 연민이 가고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했다.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 내가 꿈꾸는 것 아니면 내가 꿈꾸워야 한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잊고 사는 게 아닐까. 꿈이 화석처럼 굳어간다는 사실을, 어떠한 공포 영화가 아닌 이것이 현실의 일부라는 걸, 참 차가운 현실을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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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예감 - 1998년 현대시동인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202
연왕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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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의 시집을 접했을 땐 시집 중간 중간에 보이는 새로운 시도들이 인상적이었다. 인두 자국을 종이에 내는가 하면, 상처라는 시에서는 실제로 종이를 찢는 실험을 보였었다.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는데 있어 언어 이외의 작업들은 아무래도 시선을 끌게 되니까... 기억에 많이 남게 되는 시집이다. 읽으면서 이런 수작업을 누가 했을까, 싶은 염려도 해보게 하는 웃음이 나는 시집이기도 하다.

솔직히 이런 시도들은 개인적으로 맘에 와닿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높이 사고 싶은 것은 시인의 관찰과 관찰에서 나오는 언어적 감수성이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소재의 사용이 많지만 그 중심은 결코 우울하지 않은 밝은 나라에서 온 듯한 인상을 준다. 아마도 이 시인 눈은 참 맑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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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영웅들은 어떻게 탐험했을까 - 생각하는 글들 15
마우리시오 오브레곤 지음, 석기용 옮김 / 이끌리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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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책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은 여행을 통해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물론 효과적이긴 하겠지만,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드는 작업이다. 웬만한 애정이 없다면 소화할 수 없는 작업이고... 그러나 신화 속 영웅들의 발자취를 직접 따라간 이가 있다. 마우리시오 오브레곤이라고, 고대인의 항해를 연구하기 위해 직접 바다와 하늘을 누빈 탐험가이자 역사가다.

처음 기사를 본 건 제작년 4월 14일자 국민일보에서 였다. 책 속의 영웅들이 현재를 이끈 선구자였음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몸소 움직여 영웅들의 여정을 따라갔다는 자체가 '읽어야 겠다'는 자극을 주었다. 그러다가 18일자 문화일보를 보니 이 책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길게 다룬 건 아니었지만 첫 머리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최근 뉴욕타임즈는 그리스 시대 호메로스가 쓴 서사기 오디세이아에서 영웅들이 지중해를 누볐다는 무용담이 허구가 아니라 사실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우리 나라의 언론사도 아니고 뉴욕 타임즈를 들먹이며 과거의 내용이 사실일 수 있다는 보도가 나갔다니 신뢰성이 안 갈래야 안갈 수가 없었다. 그날 당장 이 책을 구입했다. 책 내용은 둘째 치고 책에 대한 첫인상이랄까요? 너무 좋았다. A5의 약간 작달막한 판형에 종이질도 그렇고 글씨체도 참 맘에 들었다. 어디가나 꼭 데리구 가고 싶은 책이라고 할까. 게다가 내용 역시 맘에 드니, 책장에서도 눈에 띄는 곳에 자리를 배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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