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원 창비시선 185
김기택 지음 / 창비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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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IMF를 겪고 구조조정으로 많은 아버지들이 해고를 당할 무렵, 직장인들 사이에선 이런 유행어가 돌았다. 휴가 갔다오면 자신의 책상이 없어진다느니, 그래서 책상을 가지고 출퇴근을 해야 한다느니…허허허 웃기다고 하기엔 씁쓸하게 들리는 유머 한마디. 뭐 지금이라고 구조조정의 악몽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김기택의 시를 보니 한 숨을 내쉬던 직장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김기택의 시집 [사무원]은 이런 부분에서 시선을 끈다. 당시 사회를 살던 일명 안돼 보이는 사람들의 내부를 관찰하여 까발리는 것, 동정이나 연민을 제거하고 철저하게 그들의 모습을 내보이는 것. 그래서 읽다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차가운 시선. [사무원]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가 1999년이니, 당시의 우울한 상황과 너무나 어울리는 시집이 아닐까.

그 중 <화석>이라는 시는 일에만 매달리는 직장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화석처럼 굳어가는 사무원의 모습을 거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정보처리가 빨라진 사회이니 만큼 개인이 처리할 일의 양은 많아지고 처리 속도는 빨라졌다. 그러니 거북으로 설정된 사무원에게는 토끼와의 경주처럼 땀빼는 게 회사일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코미디일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회사일에만 매달린 회사원은 화석처럼 굳어져서 부서지고 만다. 여기서도 화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 감정의 동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읽으면서 나는 속상했다. 거북등의 회사원에게 연민이 가고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했다.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 내가 꿈꾸는 것 아니면 내가 꿈꾸워야 한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잊고 사는 게 아닐까. 꿈이 화석처럼 굳어간다는 사실을, 어떠한 공포 영화가 아닌 이것이 현실의 일부라는 걸, 참 차가운 현실을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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