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처음에는 픽션인줄 알았지만 픽션처럼 쓰인 에세이라고 한다.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일대기를 쫓으며 주인공이 자신의 삶 또한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그는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다시 보게 되면서 자신, 즉 ‘우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특별하지 않고,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결국 주인공은 새로운 관점을 깨닫고 받아들임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데이비드에게 빠져서 그에 대해 알아가려한 것이지만 알아갈수록 드러나는 그의 우생학적 면모는 주인공이 점차 그를 객관적으로 보게 했고, 주인공 자신의 삶 또한 돌아보게 한다.
데이비드는 ‘어류’라는 범주에 갇힌 채 평생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붙잡고 살았다. 그는 긍정적으로 자신의 믿음과 환상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갔지만 주인공은 그와 달리 그 목표와 믿음 바깥에 존재하는 진실된 세상을 보는 시야를 갖게 됐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진실을 알기 위한 도구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관계를 배신하는 행위를 한 주인공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배반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미 거기서부터 그 사람의 근본을 부정하게 되곤 한다. 이 책을 보고 나서, 모든 사람이 고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관계에 대한 배신은 내게 있어 엄청나게 큰 부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이건 개인적인 트리거라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게 픽션이었어도 화가 났을 텐데 논픽션이라는 부분에서 저자가 이 부분을 자신의 훌륭한 문체로 덮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인공 또한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후반부에 가면 처절하게 깨닫고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포기하고 나서 새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게 되지만 앞부분에서 그가 스스로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부분은 너무도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책 자체에 대한 놀라움은 대단했기에 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평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음에는 해당 부분을 읽었을 때, "뭐야 이 미친, 설마 범죄 행위를 한건가?"라고 생각했는데 끝에 가서 저자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단순히 관계에 대한 배신 행위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봐야 범죄가 아니게 된 것뿐 내게 미친 충격은 여전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