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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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일: 2022.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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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흡입력 있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지는 않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오세 미노루’ 는 도쿄의 오카지마 건축 사무소라는 작은 사무소에서 일하는 건축사로, 아내와는 이혼하고 딸과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게 고작인 중년의 남성이다. 일본의 버블 시대를 버티지 못하고 함께 붕괴해버린 뼈아픈 시대를 겪은 사람이기도 하다. 초반부는 이 호기심이 그나마 책장을 넘기게 해준다. 왜 아오세는 아내인 유카리와 이혼하게 되었나? 그것을 애써 숨기려 하던 아오세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결국 털어놓고 만다. 꺼진 버블과 함께 주저앉게 된 자신과 그 소용돌이 속에 그저 사라져버린 가족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은 제목과 아오세 미노루의 직업에서 알 수 있듯이 ‘집’이라는 소재를 메인으로 쓰고 있다. 아오세와 유카리의 이혼에도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두 사람이 바라는 ‘집’이라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정주(定住)하지 못한 채 떠돌이로 살았던 아오세의 과거는 아내 유카리가 그를 ‘조류’로 보게 하면서 또한 끌리게 했지만 가족이 되었을 때에는 서로가 바라는, 함께 살고 싶은 ‘집’을 쉬이 떠올리지 못하게 했다.

작가는 어쩌면 이 ‘집’이라는 것을 통해 ‘가족’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집과 가족은 참 떼어 놓기 어려운 말이다. 요즘은 가족이라도 한 집에 살지 않고 떨어져 지내는 일이 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족이라는 단어는 한 집에 부대끼고 지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고 아귀를 맞춰나가는 느낌이라는 것이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아오세는 요시노라는 부부에게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통칭 Y주택이라고 하는 이 집은 이야기 내내 등장하면서 이 이야기를 미스터리로 탈바꿈시킨다. 요시노 부부는 아오세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 달라고 했다. 아오세는 그 의뢰 덕분에 Y주택에 자신의 과거와 어긋났던 가족의 이상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노스라이트가 들어오는 북향의 목조 주택. 아오세는 유카리와 이혼할 때 ‘집을 안 짓기를 잘했네.’ 라고 말했지만 그는 Y주택을 짓기를 정말 잘한 것이다. 하지만 이 Y주택이 지어진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요시노 부부는 입주를 하지 않았다. 아오세는 그 기이함에 Y주택을 찾아가게 되고, 집안을 난잡하게 어지른 침입자의 발자국과 텅 빈 집 안, 의자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아오세는 그때부터 요시노 부부를 찾으려 노력한다.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었다. 그런 장소에 요시노 가족이 입주하지 않은 건 아오세의 마음 속에서 석연치 않은 응어리를 자꾸만 남겼을 것이다. 대체 그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편 오카지마 사무소의 소장 오카지마는 후지미야 하루코라는 예술가의 기념관을 짓는 시의 사업에 공모할 수 있는 자격을 따낸다. 그 과정에 꽤 무리를 했다는 오카지마의 말을 들으며 아오세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말 한 마디가 어떻게 바뀌는 지를 아오세는 이때 알아챘어야 했다. 아오세는 소장을 도와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요시노 부부를 찾는 여행을 계속한다. 그는 텅 빈 집에 덩그러니 남아있던 의자를 단서로 브루노 타우트라는 독일인 건축가에 이른다. 그 의자가 '타우트의 의자'라는 실마리 하나로 아오세는 타우트 마니아이자 기자인 이케조노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요시노에게 점점 가까워진다. 이야기가 얽혀가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거나 예상하던 전개가 뭉그러지기는 하지만 결국 아오세는 닿았다.

‘처음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던 것이다.’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프롤로그가 더 긴 이야기를 과감히 생략하고 아오세 미노루라는 인물에 집중된 이야기는 미스터리라기에는 지나치게 디테일하고,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다. 미스터리가 미스터리로 남지 않을 때 시원섭섭함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책은 제법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아오세 미노루에 대해서는 오카지마가 웃는 얼굴로 던진 말로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도망만 치던 너한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버블 시대을 마주했던 일본의 중년 건축사의 제법 흥미로운 인생 한 막을 본 기분이다.

다행이다, 아오세. 마음 한 켠에서 나는 이 사람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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