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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목격자들 - 새로운 과학기술은 미래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꾸는가
정재승 외 기획, 오준호 외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9월
평점 :
완독일 2019. 11. 18
혁신의 목격자들은 한 챕터마다 다른 저자가 챕터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기술에 대해 풍부하게 접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 나오는 기술이나 미래 산업에 관심이 있고, 개념을 알고 있으며,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갖고 있어야만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전반적으로 규제 완화를 주장하며 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깔려있는 편이다.
01. 로보틱스: 우리는 어떤 로봇과 함께하게 될 것인가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기술의 공급 곡선은 대체로 한 가지 형태를 띠지만 수요는 다양한 형태를 띤다. 예컨대 군사나 의료 분야는 기술 수준에 관계없이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언제나 시장이 존재한다. 기술이 다소 미흡하고 비싸더라도 조금이라도 개선된 점이 있다면 당장 써보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와 교육 분야도 첨단 기술에 민감하다. 지금은 수요가 크지 않지만 재활 및 노령화 분야도 소비자 기대치가 낮으므로 장차 주목해야 한다. ‘이 정도만 되더라도 기꺼이 사겠다’는 사람이 있을 만한 영역이 어디인지 보고, 기술을 잘 다듬어서 시장을 장악해야 한다. 시장의 격변이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언제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5년 뒤를 내다보며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혜안이 필요하다.
로봇 산업 파트는 마치 경영 수업이라도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래를 염두에 두고 시장분석, 산업분석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로봇 산업이라는 것이 산업과 상당히 연계된 기술이기 때문이 아닐까. 로봇은 로봇이라는 기술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돕거나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어서인 것 같다. 그 기술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다른 것에 비해 명확한 것이다.
인간이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사람이 하기에는 위험한 일, 사람이 기피하는 일을 대신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위에서 생각했던 내용이 여기에 나온다. 인간은 결국 로봇을 사람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만들고 있다. 이 목적없는 기술 개발이 과연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낙관적인 미래를 바랄 뿐이다. 그렇기에 로봇은 로봇답게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로봇과 상호작용하며 공생하는 삶을 원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가 어쩌면 로봇과 인간을 공생하는 미래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바로 옆의 사람보다 로봇을 믿게 되는 세상이 곧 올 것 같다.
03. 증강현실: 증강현실에서 증강휴먼으로
플랫폼의 패러다임은 계속 바뀌고 있다. 플랫폼은 점점 작아지고 값이 싸지며 빨라진다. 또한 그 지능은 더 높아지고 인터페이스는 사람에게 더 친숙해져간다. 초기에는 컴퓨터에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려면 직접 키보드로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다. 이후에는 복잡한 과정이 마우스 클릭으로 대체되었는데, 모바일 시대로 넘어온 지금은 그저 화면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기 위한 문턱이 계속 낮아지는 것이다.
얼마 전에 시각 장애인에 대한 기사를 봤다. 점점 점자가 있는 물건은 사라지고 있고, 그저 터치하여 이용할 수 있는 물건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면 키오스크로 대변되는 편의를 위한 시설들이 오히려 IT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연령층에게는 전혀 편의성이 없다는 걸 보면 이 부분은 참 생각해볼 지점이다.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발전하는 기술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점점 늘어난다는 건 그 기술의 발전이 오로지 인간을 위한 것이 맞는지 고민하게 한다.
정보와 기술의 격차는 점점 더 세대와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거대하고 투명한 벽이 될 거다. 우리는 아예 모르는 것이 늘어나고, 알던 것도 순식간에 바뀌어서 모르는 것과 다름 없게 될 거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2, 30년은 커녕 10년도 가지 않는 너무 초고속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축복만은 아니라는 게 두렵다. 과도기를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지만 요즘은 적응할 수 있는 텀이 너무 짧아지는 모양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인 한 사람은 언제나 과도기에 놓여있다. 우리는 성숙하기도 전에 다음 과도기를 맞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세대 플랫폼의 물성 및 형태에 대해 시장조사를 해보면 대체로 안경이나 손목시계 타입이 높은 선호도를 보인다.
사실 나는 이 웨어러블 기기에 대해 그닥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데,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심리에서 완벽하게 그 기대감을 잘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큰 화면과 가벼운 무게의 스마트폰을 선호한다. 즉 웨어러블 기기가 아무리 좋더라도 웨어러블 할 수 있을만큼 화면이 소형이라면? 시야에 들어올만큼의 화면이지만 안경의 무게가 약간이라도 무거워진다면? 사람들은 그 기기를 외면하게 될 거다. 그래서 나는 이 웨어러블 기기는 금방 사그라들고 바이오칩으로 넘어가거나 차라리 지금처럼 외형적으로 보이는 기기를 계속 쓰게 될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차라리 자동주행 자동차에 전면 차유리를 화면으로 쓰는 게 더 멋져보이잖아? 자랑도 쉽고.
사용자가 AR을 활용해 계속 콘텐츠를 만들고 축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최근 만들어지는 플랫폼에는 이런 고민이 없다. 페이스북은 누구나 쉽게 AR과 VR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의 역할을 노리며, 네트워크·콘텐츠·디바이스 회사를 묶어서 전체 생태계를 이끌며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페이스북 외에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IT 기업들이 뛰어들어 서로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형편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의 기술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만 앞에서도 한번 언급되었듯 우리나라의 R&D가 국가 연구비 지원에 좌우된다면 이건 단순히 기업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게 된다. 나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미국의 페이스북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처럼 생태계를 만들 힘이 없다고 느낀다. 물론 대기업 중 일부는 가능한 곳도 있겠지만 스스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있는 생태계에 편입하는 꼴을 더 많이 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페이스북은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이 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사람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집 안에서도 바깥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한편으로는 두렵다. 사람은 익명에 기대고 싶어한다. 나로 존재하고 싶어하면서도 나를 지우고 싶어한다. 가상현실 속에서 나는 '너'를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너 또한 나를 구분할 수 있을까?
09. 휴먼-AI 인터랙션: 인간과 인공지능이 소통하려면
CIRLCooperative Inverse Reinforcement Learning(협력적 역강화학습)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둔 방식이다. 인공지능은 결정을 내리기 애매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먼저 물어보고 행동할 때 보상을 받고, 인간은 인공지능을 가르칠 때 보상을 받는다. 이렇게 로봇이 묻고 인간이 가르치면서 마치 2인 3각 달리기 같은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까지 봤을 때, 나는 인공지능에 내가 지나치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인간과 정교하게 닮아있더라도 그것이 나를 돕는 도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인공지능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해의 범주를 뛰어넘는 과학이란 마법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 인공지능을 사람처럼 느끼고 감정이입하여 사랑을 느끼든 혹은 두려움을 느끼든 같은 생명처럼 대하게 되는 건 어떤 의미에서든 인공지능에게 생명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내 안전을 위해 인공지능을 의도적으로 그 자리에서 배제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내 삶에 함께 하고, 애착을 갖는 물건이 되고, 상호 소통이 가능해지면 언젠가는 그 위치를 자연스럽게 차지하게 될텐데 나는 그때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자신의 안전보다도 인공지능을 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으며,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될까. 과연 그 선택은 가치가 있는 일일까? 인공지능이 바라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감정을 이입한 '나'의 욕망은 아닐까?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자신을 인격체로 대우해달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책을 시간을 두어가며 읽었더니 1장에서 이야기했던 이야기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인공지능을 옆의 사람보다 더 믿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생각하면서도 인격을 부여하거나 생명체로 느끼게 되는 걸 피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격체와 가까워져도 결국 나는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이라고 여기는 듯 하다. 먼 미래에 실제 인격체라고 느낄만큼의 인공지능을 마주한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19.11.26 추가)
10. 인공지능 융합 플랫폼: 2028년을 상상하라
민간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 XSpace X가 위성 탑재 로켓 ‘팰컨 9’을 발사한 후 1단 추진 로켓을 지상에 재착륙시키는 데 최초로 성공한 날이었다. 이 성공이 역사적이었던 것은 이로써 ‘로켓 재사용’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로켓은 모두 일회용이었다. 우주선 발사 후 분리된 추진체는 바다로 떨어져 재사용이 불가능했는데, 스페이스 X가 추진체를 원격조종하여 지상으로 재착륙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스페이스 X는 로켓 재사용 기술 덕분에 앞으로 발사 비용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발사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면 우주 여행이 대중화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 X의 팰컨 9은 우주에 관심이 많다면 꽤 유명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로켓 재사용 기술로서 이 이야기는 지난번에 읽었던 '이상한 미래 연구소'라는 책에서도 다뤄졌다. 거기에서는 우주여행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가장 첫번째로 소개한 것이 로켓의 재활용이었다. 로켓을 한번 쏠 때마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는 점과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에서 이 방법을 나는 2순위로 밀었었다. 1순위가 뭐였냐고? 바로 우주까지 로켓을 대포알처럼 펑! 쏘는 우주 대포였다. 공상적이고 멋있으니까!
14. 블록체인: 블록체인이라는 신뢰 시스템
정부에서는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사행성을 먼저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아이템베이’에서 보듯 게임 아이템이 거래의 대상이 된 지 오래고, 확률형 아이템 등 기존 게임 역시 어느 정도의 사행성을 동반하고 있다. 오히려 게임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확률형 아이템의 발생 확률을 정확하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기 때문에 광고한 것보다 더 낮은 확률로 아이템이 나오는 등의 조작 행위를 막을 수 있다. 옵스킨이 선보인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형 게임 아이템 거래소 왁스 WAX 홈페이지에는 아이템 거래 내역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게임에 접목된 사행성 요소를 줄이거나 배제해야지 이걸로 확률조작을 막자는 게 말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돈을 내고 기회를 사는 구조는 잘못됐다. 대학 등록금을 냈으면 대학 수업 기회가 평등히 주어져야하고, 게임을 샀다면 게임 내 콘텐츠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야한다. 게임 콘텐츠를 유료화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유료화된 것이 그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을지 모르는 기회여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확률과 기회를 돈으로 사는 것은 명백히 도박이며 사회는 이 구조를 방치해선 안된다.
이제는 이 두 가지 시스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개선이 아닌 혁신이다. 나는 ‘한 번 사용한 사람들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느냐’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본다.
신뢰가 필요없는 시스템이 있고 그걸 운용할 수 있다면 나는 다시는 예전 시스템으로 돌아가지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나 신뢰에 기반한 시스템을 되도록 믿지 않는다.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블록 체인을 시사 이슈로 다루면서 조금 더 공부하게 되었는데 확실히 블록 체인은 신뢰에 기반하지만은 않는 기술이었다. 그래서 더 신뢰가 가는 기술이다. 금융 거래를 예를 들자면, 보통 중앙 은행이 있고, 거래자들은 은행을 믿고 금융 거래를 한다. 즉 은행과 거래자들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거다. 하지만 이 은행이 이 신뢰를 기만한다면 이 시스템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블록 체인은 이 은행과 같이 중앙에서 관리해주는 역할이 없고, 거래자 모두가 하나의 관리자가 되는 방식이다. 한명의 신뢰가 무너져도 나머지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믿어봄직하다. 여기까지 생각하고나니 그렇다면 다수가 또는 가장 신뢰성있다고 믿었던 관리자들이 이 시스템을 기만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추후 블록 체인의 단점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2019.11.26 추가)
신기술의 등장은 항상 이념 논쟁을 불러왔다. 핵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사용되어야 하는지,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 등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합의점을 찾고 있고 시대가 바뀌면 처음부터 논의를 다시 해야 할 때도 있다. 데이터베이스가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때, 시중 은행에서는 집금이나 전표 작성 등 값싼 인건비로 처리할 수 있는 일에 왜 비싼 컴퓨터와 인터넷을 투입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은행을 떠올려보면 어떤가.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쇄국’은 이념 논쟁에서 한 순간도 정답이었던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블록체인이 반드시 사회의 탈집중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들이 탈집중화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이 원한다고 해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결국은 인터넷 발전 과정과 비슷하게 블록체인도 집중화와 탈집중화 사이 적당한 지점에서 각 영역별로 다양한 생태계를 구성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쇄국이 정답이 아니었다고 하여 개방이 언제나 정답이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사람들이 거기에 적응했고 합의를 찾아나갔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있었을 과도기의 무언가들을 고려하지 않은 개방 또한 정답이 아니었다. 어느 상황에서 쇄국은 개방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한 보호 수단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이념은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넘어가기 위해 그 사이를 얼마나 잘, 그리고 빨리 준비해야 하는 단계를 포함한 극단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