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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에게는 아이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건,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뜻이었다.
p.27 -[캐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둥근 달무리나 똥 마려운 얼굴, 혹은 어느덧 지나가버린 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란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비록 형편없는 기억력 탓에 중간중간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빠진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pp.63~64 -[세계의 끝 여자친구]
좋은 술과 후회 없는 인생이란 그런 풍토에서 빚어지는 것. 술과 인생은 무더운 여름날 꺼내놓은 생선과 같으니. 그 즉시 음미하지 않으면 상해버리고 만다.
p.204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결국 인생이란 리 선생의 공책들처럼 단 한 번 씌어지는 게 아니라 매순간 고쳐지는 것, 그러니까 인생을 논리적으로 회고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으로 예견할 수는 없다는 것.
p.224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中
+) 김연수의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은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인생을 만들어가는 근원적인 힘임을 보여준다. 작가의 말대로 사람에 대한 완벽한 이해나, 서로간의 완벽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내가 그가 아닌데 어떻게 상대를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위로나 위안도 상대에 대한 짐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가끔씩 김연수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인과관계의 답답함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하다,라는 생각. 그건 철저하게 주관적인 것이 아닐까. 나와 누군가의 관계에는 각자가 지닌 시선이 있는 법이다. 작가는 한 인물을 선택하기 보다 인물들의 관계 모두를 조망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기에 사건의 인과가 흐릿해진 것일테다.
이 책속의 몇몇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그리워하는 존재가 모두 부재한 상태이다. 그런데 곰곰히 살펴보면 그것은 그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러니까 같은 시공간에 있지 않을 뿐이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내면에서든 머리에서든 어떻게든 존재한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쉬운 만큼 어렵고, 믿고 싶지 않은 만큼 사실적이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생각을 안고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