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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나리아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워한다는 건 사랑하고 있다는 거다. 나는 지독한 말들을 퍼부으면서도 어머니에게 이렇게 곧잘 선물을 사들고 갔고, 기분이 나면 어머니 대신 요리나 청소를 말끔히 해주기도 했다.
p.35 [플라나리아]
약간 위화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내가 동경해 마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타인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야. 나는 혼자가 되어 밤길을 걸으며 나 자신에게 그렇게 자꾸 되뇌었다.
p.56 [플라나리아]
나는 허둥지둥 그의 팔에 매달려 몸을 일으켰다. 순산, 뭔가 그리운 듯한, 어느 구석인가 아픈 듯한 이상한 감정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슬슬 배가 고픈데 라면이라도 먹죠?"
그 말을 듣고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그리움과 아픔은 오랜만에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계단에서 구른 것은 지독히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p.152 [네이키드]
야마모토 후미오, <플라나리아> 中
+) 이 소설집은 일본의 문학상인 나오키상의 제124회 수상작이다. <플라나리아>는 '프리터(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생계비만을 벌며 남는 시간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사회부적응자, 낙오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경쾌하게 포착해 길어올린 단편 5편의 모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5편의 작품들이 뭔가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였을까. 작가는 인물과의 거리를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독자인 우리 조차 인물들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함께 호흡한다기 보다 철저하게 그들과 분화되어 그들의 삶을 지켜보게 된다. 이런 글쓰기는 조금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한 시선이 깊다'고 평가받았다.
인간에 대한 시선, 이라는 표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정서적인 동감이 아니라 객관화된 시선이 이 작품의 특징이겠구나 싶다. 하지만 나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다. 나는 좀 더 깊이있게 인물의 내면에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그들의 것을 내 것으로 담고 싶은 욕심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