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가연 컬처클래식 6
황라현 지음, 김기덕 / 가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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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도에게 골목 쓰레기와 돈, 인간은 하등 다를 게 없는 존재들이었다. 경시당하고 냄새난다는 점에서 그토록 절묘하게 상통하니, 인간이 돈을 멸시하고 쓰레기를 혐오하는 건 아이러니였다.

p.43

 

"청계천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적 있나?"

개미집이 따로 없지. 개미지옥. 이 빌어먹을 땅이, 사람을 잡아먹고 살아. 덩치를 불려서 이만해졌지.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너희들이야 가해자니까 우리처럼은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 천만에! 기다려. 얼마 안남았어.

p.203

 

 엄마 가지 마.  엄마 안 돼. 엄마 제발. 너는 꿈속에서 참 간절하게도 엄마를 불렀다. 깨어 있을 때 그러지. 그러면 나는 아무 미련 없이 죽을 수 있을 텐데. 너는 꼭 내가 없는 곳에서 엄마를 찾는가 보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애증이란 게 그렇다. 사랑이 클수록 미움도 크고, 미움이 자라는 만큼 사랑이 자란다. 너는 평생 동안 어미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였으니, 그만큼 나를 사랑하게 됐을 것이다.

p.253

 

모정은 잔인하다. 강도는 이제야 깨달았다. 맹목적인 것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p.285

 

 

김기덕, 황라현, <피에타> 中

 

 

+) 어제 이 책을 손에 쥐고 새벽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자극적이지만, 잔인하지만, 냉혹하지만,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임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밑바닥 인생을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이유를 가정 내에서 찾아낸 이 작품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사채 청부업자 '이강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이강도의 시점과 '엄마'라는 여자의 시점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지독하게 슬픈 정점에서 만나 '모정'을 계기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운명이 뒤바뀐 채 살아가게 된다. 이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돈'이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만드는지 잘 드러낸다. '돈'에 얽매인 사람들은 '돈' 때문에 살고 '돈' 때문에 죽는다. 혹은 차라리 죽는게 낫다 싶을 정도로 사는 것이 공포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속고 속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하며 그들이 속이는 건 타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강도는 바로 그 한 가운데에서 무감각하게 살아가다 '엄마'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인간미'가 무엇인지 서서히 알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의 기본 바탕은 '복수'다. 영화 분석은 대부분 '돈'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소설의 반전인 '복수'는 기존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 있다. '복수'와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상투적인 키워드를 그만의 것으로 새롭게 그려낸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김기덕 감독은 사람이 갖고 있는 가장 밑바닥을 언제나 끄집어낸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고스란히 자리한 '사람이니까'란 실오라기같은 희망까지 드러낸다. 나는 김기덕의 작품이 우울하거나 암울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인간의 재발견'이 존재하니까. 잔인한 혹은 위악적인 인간의 면모를 찾아내는 것이 과연 우울한 일이기만 할까.

 

어쨌든 이 소설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새벽까지 이 책을 다 읽고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했다. 마지막 '엄마'라는 여자가 진정 이강도의 '엄마'는 아니었을까,하고 말이다. 이강도에게 '엄마'는 바로 그 여자가 아니었을까. 결국 세상은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거나, 피해자는 없고 가해자만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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