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13
이우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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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오래된 별에'

 

저녁에 소파 팔걸이에 앉아 잤다

컵 속에 혼자가 출렁인다

구름이 아니고 오리가 아니고

손가락으로 안경알을 닦으며 닦은 안경을 쓰며 뭉개진 살의 금들

 

낮에 번들거리는 은행 유리문 손잡이를 보고 섰다

커다란 빈 가방 속으로 별이 가까워지는 것도 보았다

 

머리 위에 차가운 귤이 환하고

내 온도는 식는다

 

옆집 하늘에 구름이 많다 손바닥에서 아픈 소리가 자라고 세게 꽃이 솟고

 

 

이우성,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中

 

 

+)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이 철저하게 계획해서 시를 썼거나, 아니면 이 시인 특유의 단어 사용 방법이 있어서 문장을 만들어냈거나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단어를 문장의 어느 틈에 끼워 넣을까 계획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적절한 단어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고, 전체적인 시상에 어울릴만한 시어를 선택하고 여러 종류의 어미를 활용하는 것도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계획해서 쓴 시가 아니라면, 시인 특유의 문장 구성법일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그건 문장의 연결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단어의 채택이 과감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 저 단어가 말이 될까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문장들로 이루어진 시들이 많다. 화려한 수사법이나 현학적인 단어가 아니라 온전히 일상어로만 시를 쓴 시인은 이 시집에서 전체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어찌보면 시라는 최소한의 형식은 지키면서 상당히 절제된 심미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독자들은 짧은 문장과 몇 개의 단어로 잘 정돈된 이 시집을 옹호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독자들은 독자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주는 시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건 읽는이의 선택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좀 더 발전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이런 절제된 시를 쓰되 독자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길 바란다.

 

'이우성, 나무, 마음, 가방' 등의 시어는 이 시집 곳곳에서 등장한다. 등장할 때마다 같은 무게는 아닐테지만, 같은 색깔을 띠는 것은 맞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전체적인 균일함이 있는 대신, 비슷한 색감이 느껴지는 시들이 많아서 그 차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다시 한번 꺼내 읽어야겠다.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쓸쓸한 그런 느낌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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