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향고래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70
정영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심포항 2'

 

바다가 제 몸을 꼭꼭 씹어서

뻘밥을 만들어놓는다

어미가 딱딱한 밥을 씹어

여린 새끼 주둥이에 넣어주듯이

바다는 하염없이 질긴 물살을

안으로 땡기고 밀고 새김질해서

찰진 뻘 사래 긴 밭을 만들어놓는다

 

포구에 다닥다닥 붙어서

물때 들고 나는 그 실한 진저리

쟁기질로 뒤집어놓는

광활한 뻘밭에 엎드려

하루치 양식을 줍는 아낙들을 본다

괭이갈매기 눈보다 빛나는

욕설의 갈고리 뻘밭에 내리찍으며

바다의 백합을 따는 가난한 이들

손톱과 발톱이 툭툭 잘려 나간다

 

하루에 두 번씩 제 몸을 씹어서 식량을 주고

허허실실 돌아서 가는 바다 앞에서

이깟 설움, 한 끼 밥도 되지 않는 이깟 설움

무엇이라고 나는 보탬도 없이

뻘밭 고랑만 뒤지다 일어선다

김 서린 아낙의 등에 뜨거운 고봉밥이 얹혀 있다

 

 

정영주, <말향고래> 中

 

 

+) 정영주 시인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감상하는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삶으로, 사람으로 다가선다. 바다에서 일하는 아낙들의 모습을 통해, "바짝 타들어 검은 뻘로" 존재하는 서해를 통해, 시인은 "서해가 절절한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즉, 바다가 삶이고, 삶이 바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해, 저 독한 상사] 부분)

 

그건 굳이 바다에만 머무는 사상이 아니다. 시인은 산에서도, 바람에서도, 햇볕에서도, 풀에서도  절절한 삶을 발견한다. "쐐기풀을 하나하나 뜯어내다 / 내 안의 가시도 찾아낸다 /  어느 날 무심히 몸에 달고 온 / 가시풀들이 불러낸 생의 문양들"([흔적] 부분)을 어루만지며 시인은 자신의 상처도, 자연의 상처도, 타인의 상처도 포근히 안아준다.

 

어쩐 그 타인이란 어머니 혹은 아버지일 수 있다. 내가 아닌 타인이나, 나만큼 소중한 존재인 그들, 가족. "재봉틀 들들거리는 파도 소리로 / 새끼들 입을 채우던 어머니"([합장] 부분)의 모습은 "늘 그렇게 / 깜깜한 심해였다"([바람에 묻은 주소] 부분)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을 시인은 바다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렇게 바다는, 자연은, 인간의 삶 그것과 다르지 않다.

 

<말향고래>는 전통시의 틀을 잘 이어나가는 시집이다. 다만 대상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이 좀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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