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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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또 잡혀 가면 어쩌시려구요?"

할머니는 수줍은 소녀처럼 마르고 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감옥에 가면 어떻습니까? 감옥이 어떻게 변했나 구경도 하고, 감옥 식사가 얼마나 좋아졌나 먹어 보고 싶습니다."

p.20

 

젊은 시절에 목숨을 내걸고 민족해방운동에 뛰어듦으로써 완전한 순결을 얻은 그녀의 영혼은 해방과 전쟁의 혼란, 그리고 이후의 빈곤과 치욕에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았다.

p.21

 

" 마르크스나 레닌의 저서 한두 권만 읽으면 누구나 사회주의자를 자처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자기희생과 불굴의 의지를 통한 실천 속에 완성됩니다. 백수건달처럼 놀고먹으며 관념적이고 교조적인 이론이나 떠벌리는 얼치기 사회주의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조선의 사상운동은 바로 그런 관념적 인텔리를 중심으로 한 파벌운동에 불과했기 때문에 완전한 조직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사상운동이 바로 일어서려면 러시아처럼 노동자와 농민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

p.108

 

 

안재성, <경성 트로이카> 中

 

 

+) 오래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만약 내가 일제 강점기 하에서 살고 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국의 해방을 위해 적극적인 운동을 펼치는 운동가였을까, 아니면 뒷편에서 푸념이나 늘어놓으며 살아가는 수동적이고 조금은 비겁한 사람이었을까.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난 아마도 후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려우니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신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 신념을 꺾으려 드는 존재들에 대한 가혹한 행위의 두려움이다. 고문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나 무서울까. 혼자 당해내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신념이 그 두려움에 비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참으로 부끄러웠다.

 

이 책은 1930년대 경성을 누비며 암암리에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잡힐 경우를 대비해 늘 거처를 옮겼고, 혹시라도 잡힐 경우 다른 벗들을 위해 하루는 고문에 버티며 하루가 지나서야 거주지를 말하곤 했다. 그 사이 겪게 될 무시무시한 고통을 참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독립운동 앞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구분의 의미가 없다. 그저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 일 뿐이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여고생들을 보며 시대에 고민할 줄 아는 그들에게 참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땠을까. 나의 고교시절은 오로지 나라는 한 사람에 속했다. 개인적인 것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못했고, 사회를 생각하지 못했고, 시대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고문에도, 수없이 감옥을 들락거리면서도,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일까. 그건 그들이 내세운 신념이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 그것을 위해 그들은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으며, 그 길이 두렵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도중에 포기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된 그녀를 작가가 찾아갔을 때에도 그녀의 강직함은 여전했다. 감옥에 가게 된다는 것에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나는 일생을 살면서 나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줄여 주변에 대한 고민과 시대, 그리고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생각에서 그치기 보다 실천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것이 거창한 것이 아닐지라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관심을 갖고 한 걸음씩 움직이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나를 돌아보는 만큼 주변을 돌아보는 기회를 좀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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