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장난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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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어느 정도의 독성을 품고 있다. 여유 있는 존재는 자신의 독성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게 독성이란 생명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무기이자 힘이다. 국화는 자신의 독성을 강한 향 안에 은밀히 숨기고 있다. 그렇기에 그 독성조차 아름답게 느껴진다.

p.13  -[강신무]

 

"믿음이 있으면 길을 잃어버리지 않아."

p.146 -[작고 하얀 맨발]

 

"네놈 얼굴을 보면 마음을 애써 제압하려고 하는 위선이 느껴진단 말이다. 머릿속의 모든 잡념을 흐르도록 내버려두고. 그저 바라만 보라고 하지 않았느냐. 쯧,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

p.157

 

이 세상에 나를 위한 타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p.160   - [깊고 달콤한 졸음을]

 

 

전아리, <즐거운 장난> 中

 

 

+) 전아리는 최근들어 관심이 생긴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뭐랄까.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문학천재로 소문난 그녀였다.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작가의 존재를 확인하고 부쩍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은 전아리가 수상한 문학 작품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청소년기에 썼던 작품일텐데 꽤 치밀하고 노련하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엄마가 무당인 청년([강신무])과 보험설계사로 힘들게 살면서 그 스트레스를 딸에게 푸는 엄마([메리크리스 마스]), 성전환수술을 받지 못한 트렌스젠더를 영화 주연으로 삼아 촬영하는 아마추어 영화감독([내 이름 말이야,]), 살아 있는 생물의 온기를 빼앗아 영원을 약속하는 박제 전문가([박제])등이다. 이들은 자신의 어깨 위에 하나 둘 짐을 지고 살아가는데 그로 인한 불안, 초조, 불쾌 등의 감정은 어떻게든 표출이 된다.

 

무당 엄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거부하거나, 엄마의 눈치를 보는 딸을 눈치 본다고 때리거나, 동물이 아닌 인간의 장기를 꺼내 사람을 박제하는 등의 잠재된 분노를 드러낸다. 나는 그런 인물을 접하면서 묘하게도, 어린 나의 작가가 어떻게 이런 감정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꽤 놀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상상력이라는 것, 인간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이 작가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다운 작가를 보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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