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장례 문학과지성 시인선 194
김명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3월
평점 :
품절


'安靜寺(안정사)'

 

안정사 玉蓮庵(옥련암) 낡은 단청의 추녀 끝

사방지기로 매달린 물고기가

풍경 속을 헤엄치듯

지느러밀 매고 있다

청동바다 섬들은 소릿골 건너 아득히 목메올 테지만

갈 수 없는 곳 풍경 깨어지라 몸 부딪쳐 저 물고기

벌써 수천 대접째의 놋쇠 소릴 바람결에

쏟아 보내고 있다

그 요동으로도 하늘은 금세 눈 올 듯 멍빛이다

이 윤회 벗어나지 못할 때 웬 아낙이

아까부터 탑신 아래 꼬리 끌리는 촛불 피워놓고

수도 없이 오체투지로 엎드린다

정향나무 그늘이 따라서 굴신하며

법당 안으로 쓰러졌다가 절 마당에 주저않았다가 한다

 

가고 싶다는 인간의 열망이

놋대접풍으로 쩔렁거려서

그리운 마음 흘러 넘치게 하는

바다 가까운 절간이다

 

 

김명인, <바닷가의 장례> 中

 

 

+) 얼마전 다녀온 바다의 차가운 해풍이 기억난다.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오랜만에 경이감을 느꼈다. 가고 싶다는 인간의 열망이 만들어낸 꿈, 그 꿈처럼 어딘가를 향해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놋쇠 물고기. 나는 절에 갈 때마다 대웅전 처마 밑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그 소리가 마치 나를 반기는 듯 하고 나의 영혼을 깨우는 듯하여 어느 절이라도 늘 풍경을 찾곤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풍경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은 없다.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수천 갈래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줄 미처 몰랐다.

 

이 시집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길 위의 여행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곧 삶의 여행이기도 하다. 육체의 동적인 이미지와 정적인 이미지를 아우르는 것. 정신적인 성장까지 포함하여 시인은 길 위를 걷고 있다. "누구의 가담 없이도 우리 중심은 / 어느 틈에 변경된다, 시간을 건너지 않고서 무엇으로 / 우리가 늙는다 하겠느냐"([비오기 전에-인환에게] 부분) 화자의 걸음걸이는 공간의 이동 뿐만 아니라 시간의 이동까지 묘사한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그 여정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다.

 

"너는 희망을 말하지만 / 나는 가정의 한 끝을 지적했을 따름이다 / 길이 닫히고 / 길 밖에서 서성거리던 풍경들 지워진다 / 누구나 고단하게 저의 행로를 끌고 간다면 / 오늘 잡은 물고기들 다 놓아주리라," ([내 물길로 오는 천사고기] 부분) 아, 화자의 여행에서 여정보다 감상이 먼저 와 닿은 이유는 바로 화자의 길이 예정된 것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 길 위의 것들을 '가정'하는 것. 사실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임시로 정하여 길을 걸을 때, 그 사람에게서 우리는 다음 걸음의 풍경을 보게 된다. 내면 풍경이든 길의 흔들림이든.

 

"그러나 돌아가는 것이라면 언제나 죽음은 / 예고된 저녁의 짧은 어스름을 거쳐가야 하는 것이리라"([부활] 부분) 시인에게 삶과 죽음은 예고된 것처럼 다가온다. 놀랍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는 분명 스스로 짐작하던 바였을 터. "내 걸어온 버릇으로 어느새 들길 그 어귀쯤에 닿았습니다"([수레국화 가을로 굴러가고] 부분) 라는 화자의 고백이 그를 증명한다. 물론 그것이 길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발자국마다 그가 살아온 경험과 앞으로 겪계될 일들이 새겨진다. "세상은 경험만큼 확실한 것이다"([겨울비] 부분) 화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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