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서하진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스무 살 무렵에는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투고만 하면 작가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요. 왜 포기했는가, 그건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글자를 대하는 일 때문이었다면, 하고많은 책에 싸여 지낸 날들 탓이었다고 말한다면 이상한가요? 매일 대하는 그 많은 책들이 담고 있는 언어가, 단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들이 내 나날 속으로 전혀, 한치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스스로 돌연한 영감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헛된 언어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나날이 낡아가는 상상력처럼 그 깨달음도 서서히 왔습니다. 작가라는 사람들의 책을 읽을 때면 어찌 이리도 용감한가, 싶을 때가 점점 잦아졌습니다. 그 부류에 내 이름을 보태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훌륭한 소설도 없지 않았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자각 정도는 제가 있었습니다. 물론 허망했습니다. 요트 여행, 그 오랜 꿈이 좌절된다면 남편도 허무해지겠지요. 그렇지만 곧 잊고 살아갈 것입니다. 꿈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요.

p.29  -[요트]

 

그 여자는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했다. 나는 변화에 대해서 생각했다. 남편과 아이가 죽었다. 불행이 사람을 달라지게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불행은 열린 문을 닫게 한다. 열고 싶지 않을 뿐 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종래에 그 문은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닫히고 마는 것이다. 여자처럼, 그토록 큰 외형의 변화를 겪은 사람을 나는 알지 못했다.

p.62

 

진실이 고통임을, 정직하다는 것이 씻을 수 없는 죄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p.65  -[비망록, 비망록]

 

 

서하진, <요트> 中

 

 

+) 저자의 사인까지 들어 있는 책을 받아들고 너무 오래도록 읽지 않았다. 책꽂이를 둘러보다 미안한 마음에 2년이 지난 책을 펼쳐들었다. 아무런 편견없이 글을 읽으리라 다짐하며 단숨에 서하진의 소설을 읽었다. 기존에 내가 작가의 글에 대해 들어왔던 무수한 편견들과 무관하게 글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부러울 정도로 깊이 다가왔다. 무엇보다 [요트]를 읽을 때는 건조한 글자들 틈에서 저렇게 빛을 발하는 문장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서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꾸는 남편을 지켜보는 여자([요트]), 어느 날 갑자기 만난 여자를 위해 가족을 버린 아버지([비망록, 비망록]),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쓴 여자와 그 여자의 행동에 이혼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 남편([퍼즐]) 등등 이 소설에는 대부분 한 사람의 꿈과 그가 속한 가정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한 인간의 삶이 가족을 이루면서 더이상 한 사람의 것만이 아니게 되는 것, 그 사이에서 당황하거나 혹은 당연시하는 인물들의 군상이 사실적으로 제시된다.

 

이는 어떤 해결책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각 단편들의 결론이 사건의 흐름상 좀 미흡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건 해결할 수 없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과 상대방의 삶을 발맞추어간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보여주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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