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 2008년 제53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경욱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상처받은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어. 상처받은 진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진실뿐이야.

p.24  -김경욱, [99%]

 

내 얘기가 끝나고 한참 동안 미선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만 해도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상한 음식을 억지로 삼킨 것 같은 기분이 엄습했다. 악취를 뿜어내는 그 감정의 정체를 나는 스스로에게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p.43  -김경욱, [99%]

 

삶이란 나약하고 낡아가는 일체의 것에 대해 잔혹하고 가차 없는 그 무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독일 사람 니체였다. 하지만 나약한 일체의 것에 잔혹하고 가차 없는 삶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p.65  -김경욱, [당신의 수상한 근황]

 

나는 그 사람 얼굴도 보기 전에 먼저 그 사람 이름을 알았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저렇게 모두가 '보는' 곳에 사는 일이란, 그늘 한 점 없는 운동장에서 땡볕을 받고 있는 기분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형편은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상기될 터였다. 그건 가난보다 좋지 않은 일일 수 있다고, 나는 걸음을 멈춘 채 수심에 잠겼다. 그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은 그가 나의 선배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이 두식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p.106  -김애란, [네모난 자리들]

 

 

김경욱 외, <99% (2008 제58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中

 

 

+) 문학상의 기준이 무엇일까. 각각 제정된 문학상의 의미나 가치에 따라 기준이 정해지겠으나, 가끔 나는 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까 싶다. 작품들을 상대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며, 심사위원이 누구냐에 따라서 작품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객관적일 수 있느냐에 대해서 당연히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당대의 수준있는 작품들을 선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현대문학상 수상집은 개인적으로 종종 읽어보는 책이다.

 

작년 현대문학상 수상집을 살펴보면서 역시 작품을 많이 써본 작가들의 자연스러운 문체와 매끄러운 서사 전개가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 좋았다. 수상작인 김경욱의 소설 [99%]는 진실과 거짓의 이중적인 면모를 다루고 있는데,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진실인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1%와 99%의 거리, 그 사이에서 주인공은 숨겨진 진실 1%를 찾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진실인가. 이 소설은 진실을 진실로 그려내지 않고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외에 김애란의 [네모난 자리들]은 기형도의 시 구절을 인용하여 소설을 풀어내고 있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선배를 짝사랑하는 주인공이 삶, 혹은 사랑의 돌파구를 찾아 사라진 선배의 방에 방문한다. 그곳에 갇혀 있는 선배의 사랑을 안쓰러워 하면서도 자신의 사랑 또한 빈 집에 놓아두고 나오는 장면은 압권이다.

 

윤형수의 [만 장]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잠꼬대로 미래를 예견하는 은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은자의 아들 자훈이가 그들을 찾아다니며 은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각각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유지하며 그들이 바라본 은자의 모습을 열거하는 구성이 제법 흥미로웠다. 끝내 은자와 자훈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느새 그들의 관계와 일생 그리고 심리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앞서 말한대로  어떻게 수상작을 선정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지만, 이런 책에 실린 모든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며 최근 작품들의 경향을 살펴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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