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제1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잠시, 라고 생각할 때 시간은 멈춰주지 않는다. 그 잠시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뀔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일 뿐이다.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p.56

 

인생은 생각보다 사소한 기회로 뒤바뀐다. 당신은 그것이 운명이었다고 믿겠지만, 단지 우연일 뿐이다. 당신의 인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

p.117

 

인생은 오르막길. 어차피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가까이 있어도 잡지 못하는 사소한 행복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알아버렸을 때에는 보통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일 때가 많다. 잠시라고 생각했을 때가 위험하다. 다음으로 미루지 마라. 저금하지 마라. 보험에 들지 마라. 현재를 살아라.

p.150

 

 

서진,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中

 

 

+) 내가 바라본 이 소설의 서술자는 제법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당당하게 외친다. "당신은 이야기가 너무 진부해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 말길. 다음 이야기는 죽을병에 걸린 청순가련한 여자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Skip, Skip. 다음 쳅터를 읽으시오."(p.21) 처음 이 문단을 읽었을 때 솔직히 앞의 글쓴이 소개란을 다시 읽어보았다. 서술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작가의 외침으로 들렸기 때문이고, 솔직히 이런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기도 하다.

 

"그러나 당신은 티브이를 보다가, 인터넷 뉴스의 댓글을 보다가,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꼭 다시 돌아와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를 본 적이 있으니까.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당신이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신은 이 책의 일부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당신 없이 이 소설은 완성되지 않는다."(p.21)

 

서술자의 목소리는 무모하도록 거만한 태도가 아니라, 너무나도 식상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을 비웃는 자에 대한 비웃음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서술자의 태도다. 전자의 비웃음에 대해서도, 후자의 비웃음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소설이 기존의 것들과는 다르다, 혹은 기존의 것들과 같은 소재와 배경 속에서도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것만으로도 양쪽에 대한 비웃음의 근거가 되지 않겠는가.

 

언더그라운드, 지상과 대비되는 공간. 그곳은 악몽의 공간이다. 그런데 장자지몽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것이 현실이며 어느 것이 꿈인지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그것을 구분하는 자체가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현실이 악몽이며 악몽이 현실인 삶, 현실이 꿈이며 꿈이 현실인 삶. 그것은 현대인의 일상을 풍자하는 것이다. 영화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그것 또한 하나의 트릭이 아닐까. 영화 같은 현실, 현실 같은 영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 것은 좋았으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자신감 넘치는 작가의 태도에 앞으로 지금보다 발전한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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