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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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지된 것만 같은, 고요한 표정과 몸짓으로 침대에 다다랐다.
 그들은 그녀가 침대를 지켜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녀밖에는, 그 침대를 온전히 지켜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그들끼리 그녀가 침대를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해 암묵적 합의를 본 듯했다. 그것이 그녀에게 부여된 하나의 권리이자, 하나의 의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은 서둘러 침대를 떠났다.

p.43  - [침대]

 

 손님들은 세 명이었지만, 여섯 명으로 보이기도 했고 아홉 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단' 한 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세 명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손님들은 세 명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쩌면.

 손님들은 세 명이 아닐 수도 있었다. 손님들이 세 명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섯 명일 필요도, 아홉 명일 필요도 없었다.

p.77  -[손님들]

 

 드디어.

 찬장 두번째 서랍이 그 비밀스러운 속을 드러냈다.

 두번재 서랍 속에 충만히 들어차 있는 그것은, 한 웅큼의 텅빈 공간이었다.

p.178  -[두번째 서랍]

 

 

김숨, <침대> 中

 

 

+) 김숨이라는 작가의 세계는 탈현실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현실과 탈현실을 정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내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논리에 적합하냐, 적합하지 않냐 하는 것인데 그녀의 글은 철저하게 우리의 현실을 벗어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의 소설을 읽을 수록 그녀가 적어내려간 작품 속의 세계는 그녀에게는 분명히 현실일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작가에게 현실이란 자신이 섞여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지 (의식화된 것이든, 의식화된 것이지 아니든) 논리적인 흐름 따위는 필요 없다. 대부분의 그녀의 작품은 작중인물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은 성공한 듯 하다. 다만 나는 현실 속의 독자라 그런지(물론 내가 정한 속세의 현실이겠지만) 그녀의 작품 대부분에 허무함을 느꼈다.

 

묘하게도 작품들은 비슷한 색깔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천운영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다고 특별히 음울한 표현들을 사용한 것은 아닌데도 김숨의 소설에는 무지개빛 색깔이 전혀 없다. 그저 자기가 만든 짙은 황갈색이 존재할 뿐이다. 작품 속 인물들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자의 최후의 발악을 보게되는 경우가 많다.

 

그녀의 독특한 문체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지나치게 자폐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쩐지 자기 안에서 맴돌고 있는 작품들은 독자에게 불친절하게 다가온다. 나는 그녀가 차라리 인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드러내려는 그녀만의 현실, 조금은 불쾌하고 약간은 답답한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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