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팔십년대
임철우 외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엮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전쟁중에 우린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것도 영원히. 처음 만난 사람을 보면 무슨 생각이 가장 먼저 드냐 하면 말이야, 내가 저 사람을 앞으로 두번은 더 만날 수 잇을까, 아니면 세번? 그 안에 우린 대부분 죽게 마련이니까. 살아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의 삶을 지탱해온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을 기르면서 가르쳐준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내가 군대에 지원해서 전쟁터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말했어요. '아들아,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너를 미워하고 욕할 수는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누구한테서도 경멸받을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 방현석, [존재의 형식]

 

햇살 아래였다면 그 표정이 분명했을 것들이 안개 속에서는 애매하고 몽롱했다. 사람과 사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명하지 않은 그 거리가 작은 위로처럼 마음에 와 닿았다.

- 정도상, [함흥, 2001, 안개]

 

 

김인숙 외, <소설 팔십년대>

 

 

+) 80년대는 자유와 진보를 향해 열정을 내뿜었던 시기이다. 민주화를 모색하며 모두들 걷고 또 걸었던 그 때. 시대의 아픔과 분노와 희망을 노래한 작가들이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상처를 안고 상처를 아프게 짚어 나가야 했던 때. 그때의 작품들을 묶어서 만든 소설집이다. 80년대의 소설과 80년대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엿보기에 좋은 기회이다.

 

이 책에는 '임철우'와 '정도상'의 광주와 분단 문제, '방현석'의 노동자와 노동 현장의 사실적인 묘사, '김인숙'의 금지된 이상을 향한 열망 등이 몇몇의 단편으로 그려진다. 읽으면서 언젠가 '방현석'의 문체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놀랐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마치 그 현장에 있는 사람처럼 인물을 살릴 수 있는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는 묘사에 나도 놀랐다. 그만큼 그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요즘 문학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의 문학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었다. 소설가 조세희가 말한 것처럼 70,80년대의 암울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데 왜 그것을 강렬하게 고발하고 분노하며 안타까워하는 문학은 생겨나지 않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조차 그러한 현실을 글로 풀어내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왜 그럴까. 오늘은 그점에 대해 고민해야겠다.

 

어쨌든 80년대 문학을 엿보기에 좋은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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