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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인생 - 소심한 금쪽이들의 망망대해 표류기
우유곽 지음 / 비에이블 / 2026년 10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나를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은 불안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끝내 설명하려 애쓰는 일. 이유를 찾을 때까지 하루 종일 마음속을 뒤지고, 정답을 찾지 못하면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 의심하는 일. 결국 불안을 잠재우려다 더 큰 두려움 속으로 나를 밀어넣는다.
p.14
애매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안쪽을 들여다보면, 사실 내가 원하는 건 답이 아니라 내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그래야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마치 안대를 끼고 걸어 다녀야 하는 것마냥 불안하다.
p.23
가능성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없을 때는 갈망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계속 해내야 한다는 부채감을 남긴다. 나는 요즘 그 부채감과 씨름하는 중이다. 당장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짐작할 수 있다.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축복이었다면, 그 가능성을 어떻게 짊어질 것인가는 결국 내 몫이라는 것.
p.53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불확실함의 한쪽 얼굴만 바라봤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은 두려워하면서 성공할 수도 있다는 기대는 좀처럼 믿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수 있다는 사실만은 자꾸 잊었다.
어차피 내일을 미리 알 수 없다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불행을 정답처럼 믿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불확실하다는 것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pp.90~91
아마 시작이 어려운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도, 틀릴까 봐 두려워서도 아닐 것이다. '맞는 방향이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결은 확신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시도해야만 얻는 결과다. USB는 손에서 아무리 오래 돌려봐야 연결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냥 꽂아야 한다.
p.182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밤이 계속되는 시기가 있다.
사라지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살아지는 마음은 서로 다른 마음이 아니라 어쩌면 같은 마음의 앞뒤일지도 모른다. 사라지고 싶다는 건 내가 선택하는 문장이지만, 살아진다는 건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라지길 바라면서도 매일 조금씩 살아지고 있었다.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서 살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지는 힘이 사라지고 싶은 마음보다 내 생각 이상으로 더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pp.213~215
우유곽 글 · 그림, <소금인생> 中
+) 이 책은 배려심이 많아서 인간관계에 신경을 쓰며, 그로 인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그림 에세이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소심한 성격의 화자는 직장 상사나 선배와의 가벼운 대화에도 그 말의 의미를 여러 번 생각하는 사람이다. 친구들과 식사를 할 때도 늘 아무거나 다 좋다고 말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다.
문자 메시지의 이모티콘과 문장 부호 표시 하나에도 상대방의 태도를 확인하며 자신이 잘못한 게 있나 곱씹는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혹시 오늘 만난 이들과의 대화에서 말실수한 건 없는지 계속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그런 스스로를 소심한 금쪽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런 모습은 소심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자기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는 섬세한 감정선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소심함과 세심함, 배려심을 겸비한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애쓰고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 본다.
이 책은 애매함과 불안감 그리고 불확실함에 대해 흔들리는 마음과, 상대방을 위해 애쓰느라 지친 자신을 대하는 마음과, 밥 한 끼, 문자 하나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관계를 떠올리는 마음과, 소심한 나를 바로 보고 아껴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
평범한 일상과 만남을 깊이 분석하며 인생의 짠 바다를 헤쳐가는 소금이들을 위한 그림 에세이집이다. 무엇보다 불안과 불확실함, 애매함, 소심함 등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문장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런 순간들이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소금이들이 어떻게 하루를 대하고 생각하는 게 좋을지 전해주고 있어서 위로가 된다.
소심한 성격이라 인간관계에서 쉽게 지치는 이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며 자기를 돌아보는 이들, 소심한 스스로가 싫은 이들이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 많아 안심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귀여운 캐릭터 그림 만화와 에세이들이 골고루 실려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인간관계가 피곤하고 소심한 자신이 고민인 어른들과 청소년들 모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