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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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속눈썹 위에 올려진 성냥개비 같은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한없이 얇고 가벼운 성냥대 한쪽 끄트머리에는 작은 화약고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화약고지만, 스스로를 힘껏 으스러뜨려야 겨우 불붙는 화약고지만, 그 불이 무엇을 불사를지 알 수 없습니다.

속눈썹 위에 성냥개비가 처음 올라가던 순간부터 저는 직감했습니다. 성냥은 불이 붙어야 존재 의미를 갖는다는 걸. 한 개비, 한 개비 머리끝에 불이 당겨지는 순간을 두려움 속에 갈망하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걸.

pp.11~12

강성재군은 주저 없이 군중 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놓칠세라 저는 강선재군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갔습니다. 질투가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시집의 또다른 시를 떠올리며, 제가 고민 끝에 적어준 고백이자 다짐의 말 두 줄도 질투의 힘으로 눌러쓴 것이었습니다.

성냥개비가 올려진 속눈썹 같은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내동댕이쳤다 움켜쥐고 움켜쥐었다 내동댕이치는 주먹의 마음을 공깃돌이 어찌 알까요. 왜 내동댕이치는지 언제 움켜쥐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하나 확실한 것은 둘의 뿌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뿐. 그래서 소설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p.38~39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그제야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은하씨와 가만히 눈을 맞추며. 서로의 과거를 상상하고 동시에 둘만의 미래를 기억하려는 것처럼.

은하씨라는 사람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 관해 상상하는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에.

pp.97~98 [너는 별을 보자며]

"막 쓰면 돼요. 중력을 무시하고 쓰면 돼요."

학생들의 눈꺼풀에 유독 중력이 두 배로 작용하던 어느 초여름 수업시간에 미끼를 던지듯 말하고 너를 주시했지. 눈도 깜짝 않더구나. 거짓말탐지기 바늘이 그려내는 균일한 산과 골처럼 정직하게.

"막쓰가 아니라 막쓰무쓰네요. 막 쓰라. 중력을 무시하고 막 쓰라."

누군가의 말에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되도록 여전히 너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어.

pp.151~152 [너는 지구에 글쓰러 오지 않았다]

후배 교사들이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눈사람 같은 거였다. 애써 눈을 뭉치고 굴린 당사자조차 거기 만들어두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 존재. 호균과 함께 나눈 기억이 하나둘 사라져갈 때마다 주옥은 몸뚱이 한 귀퉁이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p.189 [모르는 사람]

작가는 이름을 갖지 못한 것들에 이름 붙이는 존재입니다. '장미'는 이름일 뿐, 거기에는 향기도 빛깔도 없다는 말은 단견입니다. 이름이 없으면 장미 향기도 장미 빛깔도 없습니다. 이름 모를 들꽃에 어떤 향기, 어떤 빛깔이 있겠습니까? 장미라는 두 글자는 장미 그 자체입니다. 파악 불가능한 물리현상도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파악 가능한 진리로 둔갑합니다.

p.244 [나는 남조선 작가입니다]

김경욱,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中

+) 이 책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작품들은 '소설' 혹은 '책', '독서' 혹은 '창작' 등의 단어에서 접점을 이루며 다시 시대, 시간, 공간 등의 배경으로 나뉜다.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는 작가의 자전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가난한 집에서, 위로 누나가 넷인 집에서, 도련님으로 자란 주인공은 서울대에 입학하며 소개팅녀의 리포트를 써주고 압구정에 사는 '진짜 도련님'의 과외를 맡는다.

주인공은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는 진짜 부잣집 도련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본다. 능동적인 모습의 과외 학생과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한다. 그 순간의 감정이 선망이든 질투든 상관없이.

[오늘도 무사히]의 주인공은 실종된 큰아들을 찾아 떠나며 자신의 지난 과거를 돌아본다. 그리고 과거 서울대 캠퍼스에서 각종 전집을 판매하는 영업 사원으로 일하다가 프락치로 몰린 경험을 떠올린다.

이렇듯 이 소설들은 글읽기와 글쓰기를 초점으로 시대적 상황을 담아내고 있다. 폭력이 난무하고 정의가 숨어있던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써야 하는가. 어떤 걸 읽어야 하는가.

문장이, 책이, 소설이 간직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런 생각을 다른 작품에서도 잇고 있다. [너는 별을 보자며]와 [너는 지구에 글쓰러 오지 않았다]의 주인공은 소설 창작법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수년 동안 창작을 해왔지만 여전히 고통스럽고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는 작가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건 가까운 가족인 '아내'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운, 그래서 어쩌면 환상 속 자신처럼 보이는 '제자'를 통해 나타날 수도 있다.

저자가 여러 작품에서 언급하는 미래 그리고 외계 등의 시공간적 배경은 현실에 살고 있으면서 글과 말로 서로 통하기 어려운 이들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생각을 한다.

소통의 부재, 글읽기와 글쓰기의 괴리, 창작자의 고뇌 등을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은 소설집이다.

저자는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소설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쓴다. 이 소설집은 그 과정을 여러 단편으로 엮어 실은 책이라고 느낀다.

시적 감수성을 담은 문장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뇌,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내적 혼란과 글쓰기에 대한 열망 등을 잘 표현한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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