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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 범죄 실화, 살인자의 얼굴을 읽는 법
박진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9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사람이 얼굴을 가리는 데는 많은 의미가 있다. 특히 범죄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범인들은 그들의 얼굴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많은 강력 범죄 현장에서 범인은 얼굴을 가리려고 애쓴다. 물론 범죄를 들키지 않기 위한 이유가 클 것이다. 하지만 얼굴을 가린다는 것. 그것은 그가 사회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 사라졌다는 의미도 있다. 즉 공인된 얼굴이 사라진 상황에서 인간은 위험한 짐승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p.28
<수사연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은근히 토막살인사건을 자주 접한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죽이지?'라는 생각은 이미 이곳에서 일하면서 사라졌다. 그 생각을 넘어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자르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수사연구>의 기자들이 사체 사진 앞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처럼. 살인자들 또한 사람을 죽인 뒤 사체 처리에는 좀 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변해가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그렇게 생각해보니 오히려 더 섬뜩해졌다.
p.42
그 후 나는 한 가지 마음먹은 게 있다. 누군가에 대해 크게 분노한다면, 정말 복수가 하고 싶다면 순간적인 복수가 아닌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복수를 해야겠다는 것. 혹은 비생산적인 복수 대신 상대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생산적인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끝은 수갑을 차는 일이라는 걸 수사 전문지 취재 과정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p.95
"토막 난 사체를 수습하고, 유동수가 A 씨를 살해한 증거도 모두 찾았죠. 하지만 마지막 한 조각, 살인범의 자백과 반성을 끌어내지 못한 게 좀 아쉬웠어요."
유동수는 검찰에 송치되고 재판이 시작된 후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후 유동수 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p.227
사이버범죄가 무서운 또 다른 이유는 대면 범죄가 아니기에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큰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온라인의 삶은 오프라인과 달리 눈속임이 쉽다. 우리의 삶은 편집, 가공되고 범죄에 노출되거나 범죄에 이용되기도 한다. 혹은 우리는 직접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삶에 진짜와 가짜를 섞어 가공해 범죄의 도구로 쓸 수 있다. 동시에 직접 만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좀 더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진다.
그들에게 피해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나의 이득을 위해 이용되는 타깃에 불과하다.
p.253
박진규, <사건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中
+)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수사 전문지 <수사연구>의 취재기자이다. <수사연구>는 40년이 넘게 작성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발생한 우리나라의 많은 범죄 기록이 담겨 있다.
이 잡지는 경찰과 과학수사관들을 위한 일종의 살인사건 참고서였기에, 경찰 외부에서는 볼 수 없었다. 저자는 <수사연구> 발간을 진행하며 인간들이 지닌 최악의 욕망을 수없이 접했다고 언급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경험담이 현실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강력사건 취재 에세이집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각 사건의 담당 형사를 인터뷰하며 취재한 기록을 담아 저자가 느끼는 바를 보태서 담아냈다.
수사 전문 잡지를 작성한 기자와 강력 범죄 전문 형사가 나누는 대화는 잔혹한 범죄와 인간의 치졸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총 11개의 실화 사건을 읽다보면 생각보다 냉혈한 인간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가족 혹은 친척, 이웃, 그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 등이 그들일 수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사람을 죽이지?' 생각하다가, '어떻게 사람을 토막 내지?' 생각하다가, '어떻게 그 토막 낸 걸 들고 움직일 수가 있지?' 하는 생각에 도달한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에 두려움이 인다.
마치 스릴러 소설집을 읽은 듯 생생하고 사실적인 범죄 내용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쫓는 경찰들의 의지가 꼼꼼하게 기록된 에세이집이었다.
잔인한 범죄 현장을 꼼꼼하게 보는 형사,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형사, 죄인의 뻔뻔함에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짐을 느끼는 형사, 끈질기게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 등을 지켜보며 이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사람들의 무서운 탐욕을, 수많은 미스터리 사건을 리얼하게 담아낸 책이라고 느꼈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기에 씁쓸하다고 생각했다.
실화 범죄의 현장을 보고 싶은 이들, 취재 기자의 에세이 문장을 접해보고 싶은 이들, 강력계 형사의 활약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