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을 사랑하기
이창현(코유) 지음 / 고유 / 2026년 8월
평점 :
예약주문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삶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한 뒤로 감정 기복이 줄었다. 죽고 사는 일 정도가 아니라면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집착하지도 않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1,000페이지 가까운 벽돌 같은 책이었다. 책을 읽고 느낀 건, 우주는 넓구나, 그래서 모든 살아 있는 존재가 외로운 거구나, 그래서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싶어 서로 사랑하고 싸우고 쟁취하려고 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삶이 허무해, 나는 대담해질 수 있었다.

우주는 넓고 나는 작으니, 내가 하려는 일도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냥 하게 됐다.

pp.15~16

장자는 세상을 단단하게 구분하지 말라고 전한다. 이것과 저것, 옳음과 그름, 이쪽과 저쪽을 지나치게 확정하려는 태도에서 한 발 물러나 세상을 보라고 말이다.

꼭 무엇을 하나로 규정하지 않아도 되고, 흐르듯 살아도 된다. 한 가지 이름에 자신을 가둘 필요가 없다. 장자의 시선으로 보면 애매함은 결핍이 아니라 여백이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고, 한쪽으로 굳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이 통할 수 있다.

내 안의 애매함을 고쳐야 할 결함처럼 대하지 말자. 빨리 정리하고, 빨리 설명하고, 빨리 증명해야 할 문제처럼 다그치지 말자. 대신 조금 더 천천히, 멀리 바라보자. 아직 정해지지 않은 나를.

pp.23~25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한다. 나는 두렵고, 걱정되고, 복잡할 때 무식해지기를 택한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행동이 마비되기에, 일단 눈 감고 해보는 쪽을 택한다.

중요한 건, 내가 선택한 일들을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낭비할 거면 최선을 다해 낭비하는 것. 하나를 하더라도 충분히 하는 것.

pp.54~55

그러니까, 위버멘쉬는 특별한 존재라서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실패에 가까이 서는 사람이다. 실수와 후회를 피하려는 대신, 그 속에서 나아갈 힘을 만든다. 위버멘쉬는 폭풍을 피하는 대신, 폭풍 속에서 춤추는 법을 익힌다.

p.90

일교차가 큰 날보다, 하루 종일 비슷한 온도로 이어지는 날이 더 좋다.

큰 변화가 없는 날, 공기의 결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날이 좋다.

온종일 결이 비슷한 어떤 날엔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란하게 자신을 주장하지 않지만 조용히 제 역할을 해내는 것. 나는 두부 같은 삶이 좋다.

pp.128~129

이창훈(코유), <애매함을 사랑하기> 中

+) 이 책은 애매함의 결점보다 애매함의 가능성에 주목해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서평 전문 블로거이자 창작인들을 위한 출판사와 아지트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첫 번째로 발간한 자신의 책은 서평 모음집이 아닌, 개인적 단상을 모아 엮은 수필집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의 서평을 읽노라면 책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저자 개인의 단상들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그런 저자만의 문체가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삶의 순간마다 느끼는 두려움, 아련함, 아픔 그리고 설렘, 보람, 행복함 등. 저자의 진실함이 문장 곳곳에 잔잔하고 은은하게 잘 배어있다.

애매해서 주눅들 때 그것을 가능성으로 승화시킬 것, 틀을 정해 하나로 규정짓기보다 흐르듯 살아도 된다는 것, 결핍에서 용감하게 시작할 것.

충분히 낭비한 만큼 충분히 몰입할 것, 매일이 바닥이라 여기고 출발할 것, 꾸준한 시도를 존중할 것.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것, 당연한 불안을 즐길 것.

활활 타오르는 삶보다 두부 같은 삶을 살 것, 나를 싫어하는 이보다 나를 좋아해주는 이에 집중할 것,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을 것, 포기하는 용기를 실천할 것, 다정함을 지켜갈 것 등.

이 책에서 저자는 삶과 사람, 자신에 대해 진솔하고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는 방황하는 젊은 청춘들에게도, 도돌이표 삶에 지친 중년에게도 울림을 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애매함을 사랑하자는 저자의 말에 위로를 받는 책이다. 세상의 잣대 앞에서 애매해서 곤란한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준다고 느낀다.

명확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삶. 서툰 채로 살아가도 괜찮은 삶. 무난하게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색이 분명하지 않아 고민인 이들,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힘든 이들,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 아픈 이들, 진솔한 단상 에세이가 읽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