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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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씨는 개명을 했다. '순하고 예의바르다'는 뜻의 순례(順禮)에서 순례자(巡禮者)에서 따온 순례(巡禮)로. 나머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호칭 정리가 안 된다. 이혼한 남편은 전남편이고, 깨진 남친은 전남친인데...... 사귀다 늙어서 죽은 남친은 뭐라고 불러야 하니?"

할아버지가 떠나고 얼마 안 되어, 순례씨가 물었다.

"사별한 남친?"

"아, 그게 좋겠다. 똑똑한 거."

4~5%

내 주변에 돈이 많아 고민인 사람은 순례 씨뿐이다.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될 물건을 거의 사지 않는 사람도. 쇼핑을 싫어하는 순례 씨가 돈 쓸 데는 많지 않다. 꼭 필요한 물건은 자원 순환을 위해 중고로 산다. 차 타는 것도 싫어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썩지 않는 쓰레기,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 쓰고 남는 돈. 순례 씨의 3대 고민이다.

13%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순례 씨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글쎄."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순례 씨 생각 동의."

주변에 있는 좋은 어른들은 자기 힘으로 살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너희 집에 열여섯부터 알바해서, 스물엔 독립하겠다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음...... 나."

"그렇지. 내가 볼 땐 수림이 너 하나만 어른 같다. 현재까지."

20%

"수림아, 이 지구에서 내 최측근이 딱 한 명 있는데 누구지?"

순례 씨가 물었다. 열 번도 더 물어본 걸 또 묻는 거다.

"오수림."

내가 대답했다. 열 번도 더 대답한 그대로.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

가슴이 찌르르했다. 이 넓은 지구에서 나는 어떻게 순례 씨를 만났을까.

"순례 씨도 행복하게 살아야 해. 1군들 때문에 속 끓이지 마."

38%

"수림아, 있지."

"응."

"너 나중에 넉넉하게 살게 되면 말이지."

"응."

"둘째 고모처럼 조의금을 많이 내는 어른이 되면 좋겠어."

"그럴게."

"돌려받을 거 생각하지 말고, 많이 해."

60%

"아직도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응."

"재밌어?"

"그게, 교과서는 책에서 어떤 데만 뽑아서 실어 놨잖아? 그 어떤 데는 쉬워. 책 전체는 어려워도 말이야, 일부는 쉬워."

"......"

"인생도 그런 것 같아."

"순례씨, 있잖아. 나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태어난 게 기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왜?"

"태어난 게 기쁘니까,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마우니까, 찝찝하고 불안한 통쾌함 같은 거 불편해할 거야. 진짜 행복해지려고 할 거야. 지금 나처럼."

89~90%

유은실, <순례 주택> 中

+) 이 책은 '순례' 할머니와 '수림'이의 사람 냄새 나는 사랑과 우정을 담은 소설이다. 수림이는 외할아버지의 여자 친구인 순례 씨의 품에서 자랐다.

아이들이 어릴 때 수림이 엄마가 육아로 지쳐 수림이를 할아버지께 맡겼는데, 그때 할아버지 여자친구였던 순례 씨가 수림이를 키운 것이다. 그러니까 수림에게는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가 순례 씨이다.

반면에 수림이의 표현에 따르자면, 자신의 가족은 1군들이다. 만년 시간 강사로 자립성이 떨어지는 아빠, 학벌과 출신지 및 사는 곳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엄마, 공부는 잘하지만 자기중심적이고 까탈스러운 언니.

이들은 수림과 혈연관계이지만 수림에게는 순례 씨보다 조금 먼 사이인 1군이다. 그와 달리 순례 씨와 수림은 서로를 최측근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손녀 사이로 관례를 맺기보다 서로에게 더 의미 있는 말, 즉 최측근으로 표현한다.

이는 순례 씨가 무엇이든 경계를 지어 구분짓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선택한 표현이다. 그래서 수림이는 순례 씨를 할머니라는 호칭어로 부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사람인 순례 씨로 부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경제적으로 몰락한 수림이네 가족을 순례 씨가 본인 소유 주택에 머물게 해주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나약하고 현실성이 없는 수림이 가족의 모습을 잘 알고 있는 수림이는, 순례 주택에 사는 분들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가족의 만행을 막는다. 가족의 현실성을 깨우쳐주는 역할도 겸하면서.

순례 주택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소시민들이 살고 있다. 인간적이지만 정확한 순례 씨의 배려로 이들은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 소설을 읽으며 순례 씨가 실존 인물은 아닐까 생각하다가 실존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쓰고 남는 돈은 쓰레기'가 된다는 순례 씨의 발상이 돈의 가치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표현인 듯싶다.

또 순례 주택에 머무는 이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 소시민들의 삶을 현실성 있게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흐뭇해하고, 응원하며 책을 읽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나 어른들에게도 마음의 울림을 주는 책이라고 느낀다. 읽는 내내 웃다가, 감동받아 울컥하다가, 다시 이들을 걱정하기를 반복했다.

씁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았음에도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고된 현실에서 작은 희망을 갖고 싶은 이들, 유쾌하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더불어 즐겁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은 청소년들, 현실성이 가득한 소설을 유쾌하고 발랄하게 읽고 싶은 이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보고 싶은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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