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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교단은 살인을 권하지 않는다. 남자는 설명하려 했다. 고통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며 교단이 추구하는 것은 구원이다. 죽음은 목표가 아니다.
pp.23~24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ㅡ 삶의 의미, 그 삶이 고통이라도, 거기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든 견뎌낸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오래 지속되면 고통을 견뎌내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된다. 삶의 의미를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더 건강하고 자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찾을 능력과 자원은 이미 고통을 견디는 데 소모되어 사라진다.
이것은 사이비종교와 불법 다단계 사업체 등으로 대표되는 착취적인 조직이 주로 사용하는 흔한 방식이다.
pp.30~31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p.128
경은 아픔을 견디는데 익숙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아주 오랜 훈련을 통해서 경은 아픔을 잊거나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아픈 자신의 몸을 다루는 법, 아픈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p.263
경이 삶의 모든 경험을 통해 가장 날카롭게 발달시킨 감각은 타인의 공격성과 악의에 대한 감지능력과 자기방어의 본능이었다. 경은 비상식적인 상황을 애써 호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다가올 고통을 대비하지 못하게 하여 자신을 스스로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었다. 경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이해했고, 도망쳐야 한다고 그만큼 빠르게 결정했다.
pp.270~271
흉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흉터는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과 회복에 동반하는 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 뒤에 남는 감정과 기억을 대표했다. 경이 탐색했던 것, 탐색해서 되찾으려 한 것은 그 기억이었다.
탐색은 실패했다. 이제 경은 그 사실을 이해했다.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비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강렬한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즉각적인 유대감을 맺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통과 고통의 탐색은 오히려 경을 타인을부터 고립시켰다.
pp.301~302
정보라, <고통에 관하여> 中
+) 이 소설은 고통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차이를 설명하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하는 고통의 가치를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다.
소설에는 인간에게 고통이란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단체가 등장한다. 이들은 사람들을 모아 고통을 느끼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문제는 그 수준이 점점 심해져 가학적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무조건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이게 과연 구원을 향한 길인가 의심하게 된다.
반면에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진통제를 만드는 제약회사도 등장한다. 역시 여기서도 문제는 그 진통제를 목적 그대로 사용하면 약이 되겠지만, 그걸 악용하게 되면 고통을 가하는 치명적인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종교단체에 빠져 자식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 부모, 남편의 폭력을 피해 종교단체에 들어갔지만 거기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악을 행하는 엄마,
종교의 교리를 의심하지 않고 맹신하는 형,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혼란스럽지만 교리를 따르는 동생, 제약회사 또한 종교단체와 엮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그곳을 떠나려는 여자 등
이들에게 고통은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똑같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는다. 각자의 고통은 각자의 몫이니까.
저자는 이 소설에서 고통에 관하여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풀어냈다. 이 작품은 사람들이 각자 느끼는 고통의 성격이나 깊이가 같지 않다 걸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타인의 고통에 관해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준다. 각자 고통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고 그것을 감당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고통에 관해서도 우리는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것의 존재 여부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각자의 몫이라는 말이 된다.
이 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 스타일의 파격적 발상이 드러난다. 좀 놀랍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이었는데 의외로 또 잘 어울리지 않나 싶기도 했다.
소설을 다 읽고 고통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말을 폭넓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통에서, 고통에 관한 기억에서, 고통으로 인한 상처에서, 고통이 남긴 삶의 기억에서 등.
한 권의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묵직한 내용이지만 스릴러 추리 소설처럼 다가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SF 과학 소설이라 해도 괜찮은데, 이 책을 다 읽으면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된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스릴러 추리 소설이 읽고 싶다면 추천한다. 한 편의 영화로 제작해도 좋을 듯한 재미있는 소설,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