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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을 용기 - 일해야 산다는 강요에 맞서는 사람들
데이비드 프레인 지음, 장상미 옮김 / 끌리는책 / 2025년 5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유급 노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린이가 성장해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젊은이다운 야망은 잊고 죽어라 일해야 할 것을 예상되는) '진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어른이 되는 길로 여겨진다.
부모와 교육자가 어린이의 직업적 포부를 다듬어 고용 가능성을 키우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과 직업이 서로 연결된다. 일 중심 사회에서 가장 당연시되는 교육의 목적은 미리 설정된 직업적 역할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도록 젊은이를 사회화하는 것이다.
p.26
노동자로서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특정한 일련의 도덕적, 물질적, 정치적 압박 아래 놓여 있다. 다시 말하면 선진 산업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일을 해야만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사회 체제가 짜여 있다.
여기서 '필요'란 의식주와 같은 물질적 필요뿐 아니라 사회적 인정과 존중 같은 더 복잡한 정신적 필요까지 포함된다.
p.34
일이 만족스러울 수 있다고 해도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자리를 얻을 기회는 극도로 불평등하게 주어진다. 일의 도덕적 신성성은 다수가 실제로 맞닥뜨리는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소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여기서 문제는 자본주의 기업이 보람 있는 일자리를 제공할지의 여부는 흥미로운 일을 하려는 인간의 욕구에 부응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 일이 기업에 수익을 가져다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p.82
항상 지금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다고 배우는 노동자는 자신의 성격과 성과가 적합한지 의심하면서 현명하게 시간을 쓰고 있다는 만족감을 결코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고용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끝이 없는 자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비극의 길을 걷는다.
p.99
여기에 제시한 견해들에 따르면 소비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소비자의 물질주의, 단순함, 특별해지고 싶은 자기애적 갈망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시간적 리듬, 주어진 환경이 상품 집약적 생활방식을 보편화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재편된 결과이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자본주의의 상품화 경향이 자리한다.
p.115
일할 필요가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선택의 산물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전통적으로 유급 고용을 통해 충족되던 (또는 때에 따라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던) 필요를 채울 다른 방법이 있으리라는 비판사회이론가들의 흥미로운 전망도 열린 자세로 대할 수 있게 된다.
pp.138~139
단절점에 관한 이들의 이야기에서 핵심은 노동시간을 줄이건 아예 일을 그만두건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떤 철없는 반노동적 도덕성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더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유급 노동 같은 기능적인 사회적 역할은 그 안에 머물도록 강요당하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사람들과 결코 일체가 될 수 없다.
pp.172~173
일을 줄이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제약을 고려할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자본주의의 생산성 향상으로 얻은 시간 절감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사회를 조율할 수 있을지 있다면 방법은 무엇인지이다.
pp.263~264
노동 교리에 대한 저항을 일으키는데 기여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론의 문을 열자 / 사회의 주변인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자 / 언어 투쟁에 참여하자, 제대로 무장하자 / 상상력의 중요성을 옹호하자
pp.275~287
데이비드 프레인, <일하지 않을 용기> 中
+) 이 책은 현대인이 왜 이렇게 일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일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데, 저자는 이 책에서 일을 유급 활동과 무급 활동으로 구분하고 출퇴근하는 직장에서 수행하는 작업, 그리고 경제적 차원으로 설명한다.
일이 중심인 사회에서 일이 곤혹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자율적으로 일하기가 왜 어려운지 논의한다.
또 오래도록 지속되는 노동 윤리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잠식해가는지 보여준다.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소외되고 있는지 제시한다.
그리고 덜 벌되 더 자유로운 사람들, 일하지 않을 용기를 지닌 사람들, 일하지 않을 때의 불안을 감추는 사람들, 일을 줄이고 원하는 활동을 찾는 사람들 등의 모습을 다양한 사례로 공유한다.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 관점들이 우리에게 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어떻게 부여하는지 언급한다. 더불어 그런 과정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을 열심히 하며 사는 삶이 왜 당연시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일하며 살지 않으면 게으른 사람이 되고 비현실적인 사람이 된다.
무언가 옳지 못한 삶을 사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일보다 자유를 더 추구할 수 있다. 그것이 비판을 받을 이유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고수해왔다. 그건 저자의 말처럼 자본주의의 논리와 낡은 노동 윤리가 끝없이 부추겼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을 용기는 결국 덜 벌고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용기를 말한다. 이 책에서는 그런 삶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시도하고 시작해야 하는지 제안한다.
새로운 관점 그리고 다양성의 존중이 노동에도 적용이 돼야 하지 않나 싶다. 일하지 않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일하기 위해 배우는 이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어떤 잣대가 필요한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일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여러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는 책이지만 천천히 읽으면 저자의 논리와 생각을 따라갈 수 있다.
소박하게 만족하며 사는 삶을 나태나 무계획으로 지탄할 수는 없다. 현재를 기준으로 그들의 삶이 스스로에게 더 행복을 준다면 일하지 않을 용기를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