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서른 살 인생 동안 이만한 쉼표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재구실하며 살려다 보니 어느새 망가져버렸고, 재구실 따위 못 하게 됐다. 스스로 멈춰버린 일주일. 그 시간은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였다. 내가 없이도 세상은 바쁘게 돌아갔다.

1%

"근데 그게 돈이 될 거 같진 않았고, 괜찮은 거야?"

"안 괜찮은데 좋아. 그리고 좋아서 하는 일이 돈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

17%

아무리 애써도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서울역에서 무서운 노숙자 아저씨들만 보고 돌아왔던 기억. 오후 늦게 잔기침을 하며 집에 돌아온 내게 가족 중 누구도 어딜 다녀왔느냐 묻지 않았던 날.

"그러니까 인정받지 못한 가출이었구나."

22%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호의를 베푼다고 하는데, 호의를 베푸는 과정이 너무도 호의가 아닌 사람들. 즉, 호의의 가격보다 호의 제공에 따른 자가 비용이 더 비싸 다시는 그 호의를 받고 싶지 않게 만드는 사람들. 그래서 거절하면 이들의 대답 역시 대동소이하다. '내가 그렇게 베풀었는데'거나 '난 할 만큼 했다'거나.

25%

돈키호테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숭고하다. 그것이 돈키호테의 존재 이유니까. 아저씨의 필사 노트로 완독한 <돈키호테>의 주제 역시 꿈을 향한 모험을 펼치라는 것이었다. 쉰 살이 넘은 시골 기사가 세상의 정의를 세우겠다고 길을 떠나는 설정 자체가 '꿈꾸고 있네'라는 편견을 들을 일이다. 하지만 꿈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31%

아저씨는 이렇게 답했다. 한 교수 같은 사람이 이 사회의 지식인으로 인정받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걸 깨기 위해 나섰다고. 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42%

"어느새 투실투실해진 몸은 내가 돈키호테가 아니라 산초라는 걸 일깨워주었고. 그래, 농부 산초처럼 섬에 가서 당근 밭과 돼지 농장을 가꾸고 새파에 지친 사람들의 짐을 나누며 살아야지. 그게 내 깜냥에 맞는다고 생각한 거야."

75%

김호연, <나의 돈키호테> 中

+) 이 책은 현재 실업 상태인 주인공이 어렸을 때 동네 비디오 가게 '돈' 아저씨와 소통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돈키호테처럼 멋진 기사도를 가진 아저씨를 다시 만나고 싶지만, 지금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주인공은 PD였던 경험을 살려 유튜브로 돈 아저씨 찾는 과정을 방송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저씨를 아는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며 아저씨의 과거를 알아간다. 그러면서 그때 아저씨의 선택에 자신을 투영해본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돈키호테 같은 아저씨, 그가 사회에서 겪었던 수난을 고스란히 접하며 주인공은 순간순간 인간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을 비롯해 아저씨를 찾는 여정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읽는 이 역시 돈키호테의 삶이든, 산초의 삶이든 상관없이 스스로 내린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소설의 분량은 긴 편이나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 청소년들이 읽어도 괜찮을 정도로 대중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긴 소설의 어떤 부분이든 개인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휴가철에 읽기에 무난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소설을 읽으며 꿈과 용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변할 수 있고 변해도 되는 게 꿈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지금 꿈이 없는 듯해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꿈을 떠올릴 수 있다고 본다. 그때 필요한 게 용기이다.

이 소설 속 돈 아저씨와 주인공처럼 용기있게 선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더불어 부당한 사회 구조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지 다시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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