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역사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7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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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사건은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정권에 닥친 위기를 가장 간편하게 돌파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철저하게 학습된 국민에게 간첩 사건은 공포를 조장하고 위기를 인식케 하는 안성맞춤의 이벤트였다.

국민에게도 큰 액수의 간첩 신고 포상금을 내걸고 수상한 사람들을 신고하도록 권장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걸 정당화했으며 간첩 신고를 일확천금의 기회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간첩의 시대, 국민 사이에 긴장과 공포는 이렇게 일상화되고 내면화됐다.

p.31 - 동백림 간첩사건(1967)

가난한 이들이 처음으로 큰 목소리를 내며 과감하게 저항에 나섰다는 점에서 광주대단지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난을 주체화'하고 '빈곤을 사회화'한 역사적 기점으로 평가받는다.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 가난과 빈곤은 더 이상 개인적이거나 해결 불가능한 난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 전체의 노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됐다. 그런 점에서 광주대단지 사건은 우리에게 '가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다시 한 번 던져준 셈이다.

pp.48~49 - 광주대단지 사건(1971)

다만 분명한 건 국민서사화된 역사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공통의 기억과 부채 의식을 지닌 시민들로 하여금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잠재성과 가능성을 품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어느 세대의 경험과 기억이 더 윤리적이냐 올바른 것이냐에 대한 해묵은 논란은 더 이상 말싸움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이제 어느 지형의 힘과 의지가 더 강한지를 증명하는 일은 좀 더 문화적인 개입과 판단을 요구하게 됐다. 한국에서 역사 해석의 주도권은 이제 국민서사화의 가능성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78 -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

또한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국민을 배부르게만 해주면 그만이라는 독재자들의 시혜적 관점이 우리 국민의 '몸'과 '정신'을 완전하게 장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밥'과 '자유' 중 무엇이 더 긴요하냐는 양자택일의 소모적 질문을 비로소 내동댕이칠 수 있게 됐다. 밥의 소중함 못지않게 자유의 목마름도 동시적으로 절실하다는 욕망이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p.94 - 6월 민주항쟁(1987)

나이 어린 천재들에게 지식의 공급은 이뤄졌을지언정 사회적 유대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길러주는 일은 대개 소홀했다.

한편 인적 자원의 개발만이 공동체의 번영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 여기는 한국의 사회적 경향이 과도한 교육열과 천재의 낭비를 정당화했다. 천재성이 빛을 발할 수 있게 곁에서 기다려주기 보다 사회 전체가 빨리 천재성을 증명해 보라며 다그치고 감시했다.

천재의 비참한 말로는 퇴행적인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p.147 - 김웅용 천재 소동(1967)

1970년대 한국 사회는 '성장'과 '발전'만을 중히 여기고 '사고'와 '재난'을 대비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만일의 위험에 대비하는 사회 시스템도 부재했으며 위기가 닥쳤을 대 사회 전반의 대응 능력 역시 취약했다.

p.163 - 대연각 화재 사건(1971)

별황자총통 발굴 조작 및 사기는 한국 사회 특유의 '조급한 성과주의'와 '비뚤어진 민족주의'가 결합되어 발생한 사건이었다. 문화재 발굴 및 국보 지정은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하며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p.193 - 별황자총통 발굴 조작 사건(1992)

<자유부인>은 실상 전혀 자유롭지 않은 여성의 '일탈 미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사회는 이런 정도의 여성 욕망마저 철저하게 단죄하거나 응징하려 했다. 근엄한 남성들은 여성의 욕망 표출을 '사회적 위험'과 '젠더적 도발'로 받아들였다.

<자유부인>은 역설적으로 여성이 자유를 얻기 위한 도전이 얼마나 험난한지 보여주는 '여성 억압의 서사'에 가깝다.

p.318 - 자유부인 논란(1954)

강부원,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中

+) 이 책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약 40가지 사건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각 이야기의 말미에 조금씩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을 덧붙인 구성으로 되어 있다.

흔히 스쳐 들었던 일들이라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역사적 사건들을 저자의 쉽고 상세한 설명으로 자세하게 알 수 있었고, 그와 더불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그때의 언론, 국민, 정치인들의 반응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현대사의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기에 마음이 아프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그 사건들 이면에 깔린 정치적 농간도 알 수 있었고, 역사적 사건들을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할지 스스로 고민할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40가지 사건들 중에는 익숙한 사건들도 많지만, 처음 들어보는 낯선 사건들도 많았다. 그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그 시대와 사회의 분위기를 탐색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응 방식이 어땠는지 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국민서사화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했는데, 이제는 그만큼 역사를 이야기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느낀다.

물론 이때 변하지 않아야 할 점은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적 수용을 피하고 진위 여부를 고려하며, 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두루 접해 바로 세운 기준으로 역사를 대해야 한다고 느낀다.

사건 하나하나 마음 아프고 그 부당함과 억울함에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속상해하며 읽었다. 그러면서 언론의 역할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는 일이란 여러 사람 모두에게 필요하겠지만, 특히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보도,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보도, 그리고 권력에 굴하지 않는 언론, 그게 역사에서는 꼭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흥미롭게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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