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잠수복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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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고 꼭 누군가를 시켜서 말하게 하는 게 엄마의 단골 수법이니까. 만사가 다 그래. 학부모회 때도, 동네 반상회 때도 무슨 의견이 있으면 남을 부추겨서 그 사람에게 말하게 해. 그걸 걸 보면 항상 예전부터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번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엄마가 아니라 아빠보고 나가게 만든 게 아닐까 싶은데."

"어떻게 엄마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뭐 어때서 그래? 나도 이제 어린애 아니야. 이렇게 키워준 것도 감사하고 있지만, 어른이 되면 인격은 별도의 문제야. 나는 나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내심으로 이기려고 하면 아빠가 확실히 져. 그런 건 엄마가 더 잘하니까."

15% [바닷가의 집]

"회사도 참 너무하다. 희망퇴직 요청을 받는다고 하면서, 사실상 지명 해고잖아."

"어쩔 수 없지. 일본식 평생직장 제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니까."

"너 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건데? 그냥 인사과에 사표 던지고 와."

"10년 전이라면 그랬겠지만 나도 이제 마흔여섯이야. 정규 채용으로 이직하긴 너무 어려운 나이니까."

구니히코가 솔직히 대답하자 후지타는 한숨을 쉬며 "너도 참 잘 버틴다"라며 얼굴을 붉혔다.

몸을 휩쓸고 지나가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 구니히코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이제까지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만큼 동요가 컸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자기 연민의 심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기 때문이다.

"남자는 한번 주먹을 경험하면 무서운 게 거의 없어지지. 뭐든 다 경험이야."

32~34% [파이트 클럽]

오쿠다 히데오, <코로나와 잠수복> 中

+) 오랜만에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었다. 이 책은 단편소설집으로, 그중 코로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코로나 이후에 엮어 발간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책에는 코로나 이후 시기,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봉착한 사람들의 모습과,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옅어지는 인간적인 모습 등을 담아낸 소설들이 실려 있다.

이 작가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는 힘이 있으며, 유쾌하다 못해 통쾌하기까지 한 대사를 쓰고, 삶이나 사회에 대해 따끔하게 충고하는 문장들을 적당한 장면에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대부분 그렇게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이 책 속에 실린 단편 소설들에서 모두 '신기하고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기존의 소설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성이다.

당연히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귀신이었던 남자가 등장하고, 귀신인 줄 알면서도 무섭다기보다 고맙고 반갑기도 한 꼬마 귀신도 있고, 어떻게 아는 건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걸린 사람만 알아보는 아이가 나타나고, 점을 봐주는 귀신과 영혼이 실린 자동차까지 볼 수 있다.

아내와의 불화로 독립하면서 신기한 일을 경험하는 남자, 회사에서 정리해고 위기에 봉착한 이들의 복싱 체험기, 남자친구의 성공 여부로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고민하는 여자, 코로나 걸린 사람들을 알아보는 어린 아들을 둔 아빠, 자동차에 얽힌 추억을 따라가며 우정을 쌓는 남자 등의 모습이 이 소설집에 담겨 있다.

신기하고 놀라운 체험이 결국 의미 있는 결말을 맺는 걸 확인하면서 여전히 이 작가의 소설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생각을 했다. 순식간에 한 권을 다 읽자 문득 작가의 기존 작품들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때의 그 유쾌한 따뜻함을 만나고 싶달까.

최근에 유행하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의 소설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것보다는 예전부터 전해내려오는 오래된 민담이나 전설 같은 느낌의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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