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혼합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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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특히 별난 남자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니면 세상 남편들도 다 비슷하지만 다른 아내들이 나보다 훨씬 더 인내심이 강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과 대화를 나눠도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꼭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대체 몇십 년이 걸린 걸까, 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pp.19~20

"그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엄마는 반듯한 사람이야."

"응?"

"뭐든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습관, 그거 버리는 게 좋아. 그렇게 살면 즐거워?"

노조미의 말은 늘 비약이 심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엄마는 지금까지 계속 아빠한테 무시당하며 살아와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 거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고."

"...... 그럴지도."

p.80

가까운 사이라도 예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매너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에는 조심성도 매너도 없어지는 게 당연한 걸까. 인간이란 원래 노년을 맞이할 무렵이 되면 그때까지 꾸미고 가장해온 것들이 조금씩 벗겨지고 본래의 품성이 드러나는 걸까.

p.104

"어, 뭐라더라. 이번에야말로 무슨 패턴을 끊어낸다나 뭐라나......"

"패턴이요? 아주머니. 그 '무슨'이란 게 뭐예요?"

"미사오가 그러더구나. 남편이 기분 좋을 때는 어쩌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고쳐먹는다고. 하지만 바로 또 배신당한다고. 그러길 대체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정신을 차릴 셈인지. 그렇게 당하고도 되풀이하는 자신이 바보 아닌가 싶었다고 말야."

"그래서 그 영원한 반복 패턴에서 빠져나오려고 이혼했다는 거구나......"

pp.116~117

최근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수도 없이 튀어나온다. 젊을 때는 이 감정을 어떻게 마음속에 봉인해둘 수 있었던 건지. 이제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다.

50대는 인생을 총결산하는 시기인 걸까. 좋든 싫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건 하늘의 의지인 걸까.

p.125

"외도나 빚이 계기가 된 것뿐이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싫었던 거야."

"그러네. 정말 그럴지도."

"가령 남편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우습게 대했다거나, 자신보다 시부모를 우선했다거나. 그런 일 하나하나를 남자들은 사소하게 여길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은 자꾸만 굴욕감이 쌓여가니까. 그런 일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거든. 말하자면 영구불멸 포인트야."

p.164

이혼하고 나서 나 스스로 예전보다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소한 일로 질투하지도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p.377

가키야 미우, <이제 이혼합니다> 中

+) 이 책은 50대 후반의 여성이 이혼을 결정하기까지의 고민과 두려움, 망설임 등을 잘 그려낸 소설이다. 주인공의 아이들은 이미 커서 각자 독립한 상태고, 남편과 둘이 살면서 여자는 끝없이 남편의 존재를 벅차한다.

심지어 남편이 죽는다면 어떨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혼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자의 남편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자로,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남자는 대접받을 권리가 있고 파트타임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의 일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남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깨끗한 주거환경을 유지하도록 힘쓰며 아이들을 반듯하게 기르는 것이 여자의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여자는 딸아이 둘을 기를 때 남편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고, 혼자서 육아를 담당했다.

그때부터 여자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쌓여갔지만 이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자는 굴욕감을 자주 느끼며 나이가 들었는데 남편이 여전히 자기를 무시하니 점점 그가 싫어진다. 또 남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면서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여자가 이혼을 잠시나마 생각하게 된 것은 동창의 이혼 소식을 듣게 되면서였고, 현실적으로 이혼 과정에 대해 알아보게 된 것은 이혼한 그 친구를 만나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면서부터이다. 그만큼 여자는 홀로서기가 두려웠다.

자기 소유의 부동산이나 예금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혼 후 먹고 살 일도 마땅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하나씩 하나씩 주어진 상황에 맞게 고민들을 정리해 나간다. 남편의 피부를 스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면 이혼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 나이 58세에, 자기 소유의 예금과 부동산이 전혀 없는 파트타임 일을 하는 입장이라면, 이혼을 결심하고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두려웠을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꼭 여자와 남자, 성을 구분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보통 홀로 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집은 어떻게 구할 것이며,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주변의 시선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등등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50대 후반의 여성들이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의 대화를 통해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읽는 내내 나이를 알지 못했어도 주인공의 이혼 결심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오래도록 알고 지내는 사이라도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는 있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 모습이라면 최대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애써보는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대도시 도쿄 여행도 떠나본 적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여자가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내적으로 단단해지는 모습을 응원하며 소설을 읽었다.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 혼자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직접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두려움을 이해하기에 몰입해서 읽은 작품이었다.

꼭 이혼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니더라도 홀로서기를 꿈꾸는 여자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현실적으로 극복해가며 용기를 내는 주인공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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