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잡설
정진영 지음 / 서랍의날씨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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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는 순간 폭발하는 향신료의 복합적인 향기와 짭짤한 맛, 바삭한 식감이 미각과 후각을 자극해 맥주를 무제한으로 부른다.

특히 껍질에서 풍기는 은은한 카레 향이 식욕을 심하게 자극한다. 정말 맛있는 치킨이다.

행복이 별건가.

자기만의 치킨에 곁들이는 맥주 한 잔이면 이렇게 끝내주는데.

pp.13~15

짝태의 몸통 구석구석에 스며든 공기층은 과장을 살짝 보태면 언젠가 먹어 본 비싼 초밥의 공기층과 비교할 만했다.

비움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맛.

그야말로 진미였다.

소스도 기가 막혔다.

간장 종지에 듬뿍 담은 마요네즈 위에 청양고추와 간 마늘을 수북하게 올리고 참기름을 한 바퀴 둘러 마무리한 특제 소스.

그 소스를 머금은 짝태가 맥주 한 모금이 입안에 남긴 씁쓸함을 지우면 행복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p.21

저마다 나름 안주를 고르는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테다.

나 역시 그렇다.

첫째, 맛있어야 한다.

둘째, 배부르지 않아야 한다.

셋째, 간단히 차릴 수 있어야 한다.

육포는 이 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안주 중 하나다.

육포가 맛있는 안주라는 데에는 이견이 드물지만, 몸에 좋은 음식인지에 관해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일단 술부터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데, 건강한 안주를 따지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설사 육포가 몸에 좋지 않다고 치자.

육포는 매 끼니마다 챙겨 먹는 음식이 아닐뿐더러, 그렇게 먹기도 쉽지 않다.

육포는 비싸니까.

비싸니까......

눈물이 나네.

p.32~33

그렇다.

세상에 억지로 멱살잡이해서 이뤄지는 일은 드물다.

그런 일은 반드시 부작용을 남긴다.

해동 과정 하나 때문에 맛이 확 바뀌는 훈제연어처럼 말이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도모하고 이루려면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p.57

비와 전의 관계는 희한하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안주 중에 전처럼 날씨와 긴밀한 안주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비는 술꾼에게 없던 술자리를 일부러 만들 좋은 구실이 되기도 한다.

pp.130~131

혼술은 현실의 내가 술잔 위에 떠 있는 나를 독대하는 자리다.

혼술 하는 시간만큼 집중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좋았던 시간은 없었다.

안주는 그 시간을 말없이 함께 한 동행이었다.

p.176

정진영, <안주잡설> 中

+) 이 책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반가워할 그런 음식 에세이집이다. 안주를 어떻게 만드는지 상세하게 풀이한 요리책이 아니다. 말 그대로 술 한 잔에 딱 어울리는 안주들을, 그것도 우리가 종종 만날 수 있는 그런 안주들을 맛깔스럽게 묘사한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 술 한 잔의 여유에 '행복이 뭐 별건가. 이런 거지.' 하고 느끼는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저자가 설명한 대부분의 안주는 한 번쯤은 먹어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직 못 먹어본 것도 있었다. 짝태나, 마법의 가루를 뿌린 계란이나, 프로슈토, 분홍 소시지.

이 중에서 저자가 몹시 애착하는 짝태는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해서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 그만큼 작가가 묘사한 맛에 대한 설명이 꽤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분명 여기서 나열한 안주 중 하나로 바로 술자리를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안주에 대해 묘사한 장면들은, 사진 한 장 없는 이 책에서 사진 보다 더 선명한 이미지를 선사하는 듯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 좋다.

술과 안주에 대한 이야기인데 과거의 추억들을 불러오는 효과가 있는 책이다. 안주잡설이라는 제목처럼, 약 서른 가지 안주에 대한 묘사와 그에 얽힌 추억의 단상들이 잘 표현된 에세이집이다.

혼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접하며, 혹은 '회부심'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엿보며, 그리고 육포에 대한 저자의 단상에 깊이 공감하며 즐겁게 읽은 책이다. 유쾌하게 웃으면서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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