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소년 어제의 소녀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4
범유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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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당하는 아이도, 챌린지 대상이 된 아이도 최민석의 교묘한 덫에 걸려 괴로워했다.

"내가 한 거 아니야."

"네가 시킨 거잖아."

"시킨다고 다 하냐? 쟤들도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너희, 진짜 이런 짓을 하고 싶어?"

하은이 반의 남자애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하은의 시선을 피했다.

"이런 게 남자다운 거라고 생각해? 이건 그냥 한심한 거야."

p.18

"그리고 [삼국지연의]에는 사마의가 여장으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적진을 살폈다는 구절이 있어. 그것도 창피한 거야? 여장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어떤 옷차림을 하든 자기가 떳떳한 것이 중요한 거지. 난 여장을 하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소인배라고 생각해. 네가 그런 소인배였다니 실망이야. 내 도움이 필요 없으면, 다른 곳에 가 봐."

p.52

"무슨 소리야. 자기가 좋아서 입는 거랑, 남이 억지로 입히는 거랑 같아? 태웅이 넌 치마를 입어서 충격을 받은 게 아냐. 폭력에 진 것 같아서, 그게 화가 난 거지."

폭력에 졌다. 태웅은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도저히 풀지 못했던 어려운 문제의 답을 알아냈을 때처럼.

p.106

"네가 그랬잖아. 다른 애들이 널 한심하게 여길 것 같다고.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때 네 모습이 한심했을 것 같지 않아."

"한심하지 않다고?"

"그렇잖아. 부당한 일에 맞선 건데, 그게 왜 한심해?"

p.112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지키는 건 힘의 문제가 아냐. 용기의 문제지. 그리고 이번 일은 우리가 힘을 합쳐서 나쁜 놈들을 혼내 준거잖아. 그렇지?"

p.133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이야? 친구는 서로 돕고 지켜 주는 거야. 넌 그것도 모르냐?"

p.182

범유선, <내일의 소년 어제의 소녀> 中

+) 이 책에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소년 태웅이 등장한다. 여기서 태웅이가 고민하는 것은 정체성의 혼란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틀 지워진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란 고정관념 앞에서 어디까지 정체성을 드러내야 하는가이다.

뜨개질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그것이 자기 삶과 자기 자신에게 큰 힘이 된다면 남자라도 뜨개질을 할 수 있다. 뜨개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자들이 주로 해온 것이라 남자가 뜨개질을 하면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주목받게 된다. 소설에서 태웅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 남자답다는 것과 여자답다는 것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 그 어떤 행위에도 성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사람이,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되는 것이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주변 친구들이 도우면 되고, 함께 고민해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태웅은 타임슬립을 경험하며 과거 즉, 조선시대로 이동한다. 거기서 금원을 만나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갈 방법을 연구한다. 그러면서 금원이 여자라 제약을 받는 사회적 현실을 확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적극적인 금원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학교에서 태웅이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태웅이를 금원이 위로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태웅이가 용기를 내서 친구를 도왔음에도, 오히려 학교 폭력의 대상자가 될 두려움에 그것을 잊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금원의 말처럼 정당하지 못한 것, 부당한 것에 부당하다고 말하며 거부할 수 있는 건 큰 용기다. 태웅은 이미 그런 점에서 용기를 낸 사람인데, 사회적 편견 때문에 스스로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위축되어 있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태웅에게 필요한 건 남자다움, 여자다움의 문제가 아니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울 수 있는 용기가 태웅에게 있고 그 힘을 믿는 것이다. 친구를 도울 용기는 우리 모두에 내재되어 있다.

이 소설은 청소년들의 성평등 교육과 학교 폭력 예방 교육에 초점을 두고, 아이들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것 같다. 더불어 사회에 깔려있는 성 역할 등의 고정관념에 대해 어떻게 인식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 어른들도 같이 고민해도 좋을 듯하다.

금원의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과 적극적인 실천력을 응원하며, 태웅이에게 넌 진짜 괜찮은 친구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마음으로 재미있게 소설을 읽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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