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배송 하시겠습니까 네오픽션 ON시리즈 6
이세라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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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잘못 본 거 아니야? 지점장이라는 직책이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직원 뺨을 때리겠냐? 그것도 길에서? 네가 잘못 본 게 맞아. 너도 지내보면 알겠지만 선을 엄청 정확하게 지키는 사람이거든."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이래서 무섭다.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으로 만들어진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좋은 사람이니까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 나쁜 사람이니까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 용재는 민호의 선입견보다는 자신의 시력이 훨씬 정확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p.27

생수 두 박스를 4층까지 가져다놓을 때는 순간적으로 이 일을 시작한 것을 후회했다. 아니야, 생각을 바꿔야지. 편한 것만 생각하면 끝이 없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편한 것, 좋은 것은 용재와 상관이 없는 다른 세상의 것들이었다. 오늘을 긍정적으로 산다면 나중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 아파트 지역을 배정받았을 때 상대적으로 행복할 것이다. 행복은 아픔과 고통으로 더욱 빛나는 법이다.

pp.28~29

태수에게 희생이란 대단한 이유나 가치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의 성향일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보다 큰 것, 보다 중요한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본인의 인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가족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선택일 뿐이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지만, 인간적인 도리를 외면했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아서 - 받는 것이 두려워서 - 희생이라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 태수의 생각이다. 그들은 위선자들이며 겁쟁이고 새가슴이다.

태수가 그동안 봐온 바로는 죽음 앞에서 타인을 생각하는 인간은 없었다.

pp.62~63

"내 말이 맞지? 이래서 한 달은 따라다녀봐야 한다니까. 하여튼 신선한 인간들이 없어. 왜 그렇게 기회를 모를까? 틀을 못 깨요, 틀을!"

민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태수의 시선을 피했다.

"특송 물건은 절대로 열어보면 안 된다니까. 그게 왜들 그렇게 궁금해? 물건 하나 배송하고 천 원 받았으면 열어보래도 안 열어봤을 거야. 근데 수수료를 많이 주니까 궁금해진 거지."

p.76

"사람한테 문제가 생기는 걸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자기한테 주어진 임무를 벗어나는 순간,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예요. 택배 기사의 임무가 뭡니까? 배송지 주소대로 갖다주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어려워요?"

p.125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환경을 그저 받아들일지, 뛰어넘을지는 본인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내가 만든 것이고 내일은 오늘의 내가 만들어간다. 결국 지금의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나를 바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항상 같은 나로 살고 있다.

p.171 '작가의 말'

이세라, <특별배송 하시겠습니까> 中

+) 이 책은 '자음과모음' 출판사 주최, 네오픽션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택배 배송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이 가져오는 섬뜩한 결과를 몰입감 있게 풀어낸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다.

긴 분량의 소설이 아닌데도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몰입도가 높고 사건 전개의 긴박감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택배회사는 '어니스트'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존재하는 공간이다. 택배 배송에 진심이라는 점에서는 어울리고, 택배 배송에 불법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저자는 그것을 인간의 욕망과 호기심에 연결한다. 회사에서는 일반 배송과 특별 배송을 구분하여 기사를 모집한다. 일반 배송 기사들의 개인사를 파악해두었다가 특별 배송 기사로 영입한다. 택배기사들에게 특별 배송은 많은 비용을 남길 수 있어서 이득이지만, 호기심 때문에 그만큼 위험하게 된다.

어떤 일이든 주어진 업무보다 과하게 많은 비용을 받는다면 의심해야 한다. 돈을 벌겠다는 순간적인 욕심에 자기도 모르게 범죄에 합류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범죄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범죄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특별 배송 기사인 민호는 친구인 용재가 자기처럼 되길 원하지 않아서 도움을 주려다가 죽게 된다. 또 용재 역시 특별 배송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서 열어보다가 위험하게 된다. 미란 또한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다가 나중에서야 범죄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고 천천히 벗어날 기회를 엿본다.

하지만 이들 외에 특별 배송 기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사람이 정말 없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분명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냥 묵묵히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진실 앞에서 고민하고 흔들렸겠지만 많은 비용을 벌 수 있기에 눈 감고 모르는 척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사람들의 면면을,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몰입감이 높고 사건 전개가 빠르게 흘러가는 범죄 소설이라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또 반전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만큼 기대를 버리지 않는 선한 방향의 소설이기도 하다. 분명 세상은 선한 사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는 느낌이랄까.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면 나를 바꿔야 한다는 조언이 와닿은 소설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기준으로 산다. 그 기준에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공정하고 조화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보태서 산다면 좀 더 긍정적인 세상이 되지 않을까.

모처럼 한국 스릴러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듯하고, 몇 가지 트릭을 더 설정해 영화로 제작하면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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