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은 펭귄의 길을 간다 - 수십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그만
이원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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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은 대체로 암수의 외형이 비슷하다. 겉으로 봐서는 지금 알을 품는 녀석이 엄마인지 아빠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흰 가슴 깃털에 잔뜩 묻은 얼룩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둥지에서 꼼짝하지 않았구나'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또한 새끼를 돌보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개의 알을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 품기 때문이다. 알을 낳는 건 엄마지만, 그 뒤로 알을 품는 일은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한다.

펭귄을 포함하여 전체 조류종의 약 90퍼센트는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한다.

pp.21~22

경영계에는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용감하게 도전하는 선구자를 '퍼스트 펭귄', 즉 첫 번째로 물속으로 뛰어드는 펭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바닷속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가는 누구보다 먼저 먹잇감이 될 뿐이다.

펭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눈치게임을 하는 것 같다. 어쩌다 미끄러져 들어가는 애들도 있고, 옆 친구들에게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빠지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간혹 물속에 들어갔다가도 허둥지둥거리며 다시 물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동물에게서 보고 싶은 면만을 골라서 본다. 그리고 인간의 관점에서 그럴듯한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동물은 사람에게 교훈을 줄 생각 따위는 없다. 그저 자기들의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pp.48~50

바다로 들어가지 않고 한참을 서서 물을 바라보고 있던 녀석. 바다에는 살얼음이 동동 떠 있다. 그 안에 들어가야 먹이를 찾을 수 있지만 제아무리 펭귄이라 하더라도 차가운 물에 들어가기는 싫을지 모른다.

언제 물 밖에서 서성거렸나는 듯, 일단 물속에 들어간 뒤로는 유유히 바닷속을 누볐다. 아무리 하기 싫던 일이어도 막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때가 있다.

pp.56~57

살아 있는 동물은 쇼핑몰에서 파는 물건처럼 전시되는 상품이 아니다. 나는 이런 실내체험 동물원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는 걸 보면서 어린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체험해서는 안 되는 체험이다.

p.125

갓 부화한 젠투펭귄은 평균 1백 그램으로, 달걀 두 개 정도의 무게다. 4일이 지나자 그 두 배인 2백 그램이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 힘도 강해진다.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자란다. 이렇게 두 달만 지나면 부모와 같은 무게가 된다.

펭귄의 시간은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을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낸다.

pp.158~159

이원영, <펭귄은 펭귄의 길을 간다> 中

+) 저자는 극지연구소 연구원으로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펭귄과 극지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그가 남극에서 관찰한 펭귄의 일상이 생생한 사진으로 담겨 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펭귄의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다.

새끼를 기르기 위해 엄마와 아빠 펭귄이 번갈아 알을 지키고, 바다의 찬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먹이를 머금고 돌아와 기꺼이 새끼에게 준다. 그 힘든 과정을 엄마 아빠 둘이 함께 육아를 하며 견디면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이 어느새 성장하면 다시 부모가 된다.

이 책은 저자가 관찰한 남극의 펭귄 모습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냈다. 상당한 분량의 펭귄 사진을 같이 수록하고 있고, 남극의 다양한 펭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읽는 내내 귀여운 펭귄의 모습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그 추운 남극에서 찬 바람에 맞서 알을 지키는 펭귄의 모습에서 모성애와 부성애의 힘도 느꼈다. 세상 쉬운 일은 없다는 저자의 표현이 귓가에 맴돈다. 펭귄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보아도 좋겠지만, 펭귄의 모습을 보며 펭귄과 함께 스스로의 삶의 의지를 다지고 싶은 사람들이 보아도 좋겠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더불어 실내체험 동물원을 반대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동물을 만지고 눈 앞에서 본다고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생명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부터가 우선이다.

차라리 이렇게 펭귄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과학자의 글과 사진을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따뜻한 마음을 먼저 배웠으면 하니까. 모처럼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든 책을 읽은 듯 해서 즐거웠다. 꼭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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