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한다와 하지 않는다는 이다와 아니다, 있음과 없음으로까지 확장되게 마련이다. 하나의 세계에 닿지 않기보다 닿기를 수행했을 때 열리는 문의 수, 그때마다 흔적으로 새겨지는 인상들이 앞으로 이 무생물에게 어떤 해석의 준거틀을 제공할지 모른다.

p.50

관계란 물에 적시면 어느 틈에 조직이 풀려 끊어지고 마는 낱장의 휴지에 불과하다.

"그렇게 부서지기 쉬운 거라면 사람들은 어째서 가족을 이룹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러게 말이다."

p.60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중대한 잘못이란 물질적 금전적 손해와 관계있는 것이며, 용서란 피해 당사자가 그것을 탕감해주는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사람의 말은 가끔 맥락 없이 튀기 때문에 은결은 주인의 모든 말에 반응해야 할 필요는 없음을 안다. 그러나 맥락이 없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닿는 모든 곳이 맥락이 되기도 한다.

p.123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해야 할 일만 하더라도, 사람은 살아 있는 이상 돈을 쓰게 된다. 숨만 쉬면서 살아도 비용이 든다. 숨을 쉬는 일, 입을 여는 일 자체가 극도의 무게를 동반하는 것이다. 자신 이외에 한 사람 이상과 관계를 맺고 산다면 감당해야 할 공기의 밀도는 더욱 높아만 간다.

p.149

때로는 못 본 척해주는 것이 상대를 위하는 길일 수도 있다던 주인의 말뜻을, 지금은 은결도 안다.

p.165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구전을 통해 허황되게 부풀려지는 것들. 존재의 진실성 여부가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수긍과 인정에 달려 있는 것들. 잊어버린 채 방기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노크해 오거나 부지불식간에 덜미를 잡아채는 것들. 실체를 확인하고 분석하기 위해 과감히 렌즈를 들이대면 사라지는 것들. 그래서 때로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곤 하는 것들.

그러므로 존재하기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해하기를 멈춰야 옳은 것들. 은결은 그 가운데 하나의 모습으로 그의 곁에 머물러왔다.

p.246

구병모, <한 스푼의 시간> 中

+) 해외에서 잃은 외아들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던 날들, 그때 주인공 곁에 죽은 아들의 이름으로 보낸 택배가 도착한다. 10대 후반의 소년 로봇인 그것에 주인공은 은결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은결은 사람들의 대화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을 천천히 짐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고 로봇이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인간적인 행동을 선택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안타깝고, 또 때로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소시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는 은결의 분석이 우리 사람들의 생각을 돌아보게 한다. 거리를 두고, 인식된 단어만으로 인간들과 그들의 삶을 배워가는 은결의 모습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는 로봇이 등장하지만 로봇은 우리 인간의 또 다른 시선이 아닐까 싶다.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자꾸만 감정이 이입되고 마음이 쓰이는 것. 마음이나 정서가 없는 로봇이라도 '이것이 인간 사이에서는 옳다고 느끼는 언행'을 우선시하는 것. 이런 부분이 우리의 또다른 모습이지 않나 싶다.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하고, 서글프면서도 묘하게 따뜻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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