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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고슴도치 ㅣ 나무픽션 3
아사노 아쓰코 지음, 오근영 옮김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1년 7월
평점 :
이제 알았다. 내가 얼마나 말이 서툴고 눈치도 없는 데다, 그럴 생각이 아닌 데도 다른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지를. 내가 이야기를 할 때 상대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의 정체를 깨달은 것이다. 깨닫는 일은 이렇게 춥다.
p.16
"세고 약하고가 아니야."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워졌지만 눈빛은 여전히 강렬했다.
"세든 약하든 사과해서는 안될 때는 사과하지 말아야 하는 거야. 안그러면 지는 거야."
p.47
"쓸데없는 노파심일지 모르지만 자네처럼 젊은 아가씨가 이런 곳에 무슨 일이야? 이상한 생각 같은 거 하면 안 돼!"
"네, 절대 이상한 생각 안 합니다. 전 사는 게 좋아요."
p.213
"도피하는 거야."
히로가 중얼거렸다.
"응?"
"우리 엄마는 괴로운 생각을 털어내고 싶어서 청소를 열심히 하지만 그래 봐야 아무 것도 안 달라져. 청소가 끝나도 현실은 그대로잖아. 그냥 도피할 뿐이지."
"도피하는 것도 괜찮아. 잠깐이라도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지 않으면 현실에 질식할지도 몰라. 피할 수 있으면 피해도 된다고 생각해."
피할지, 그러지 못하고 불안하게 현실과 대치할지, 도피하기를 멈추고 진지하게 현실을 마주할지는 사람마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피하는 건 부끄러운 것도 죄도 아니다.
p.264
작작 좀 해.
그 한 마디를 내뱉은 순간 머릿속이 마비되었다.
p.286
"철딱서니 없이 어리광 부리는 녀석도 곤란하지만 너무 똑부러지게 사는 것도 괴롭지. 인간이란 참 성가신 물건이여."
p.293
"이기적인 것과 참지 않는 건 달라."
전혀 다르다. 지나치게 참지 않고 지나치게 견디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자기 생각대로 주위를 움직이려는 건 다르다. 비슷하기는커녕 차원이 다른 거다.
기를 쓰고 열심히 하는 것도 꾹 참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다. 종종 미덕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런 건 잘 드는 칼 같은 거다. 잘못 사용하면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버린다. 그걸 깨달았다.
p.341
아사노 아쓰코, <때로는 고슴도치> 中
+) 이 책은 일본의 청소년 소설로, 치한과 얽힌 사건에서 다른 반응을 보이는 두 청소년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성격 혹은 가치관이 다른 두 소녀는 억울하고 두려운 상황 앞에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점차 관심을 갖게 되고 서로의 다른 모습에서 배울 점을 깨닫는다.
소심해서 자기 표현력이 부족한 스즈미와 선생님과 치한 앞에서도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히로의 만남. 단순히 스즈미가 히로의 당당함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히로 역시 스즈미의 배려와 섬세함을 느끼며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히로의 언니가 직장에서 겪는 난처한 상황도 제시한다. 이 모든 인물들이 각자 나름의 상처를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상처를 감당하는 모습의 차이를 인물 별로 잘 묘사하고 있다. 사람마다 상처를 소화하는 방법이 다르기에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청소년소설이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용기를 내서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내 안의 상처를 감당하는 법에 대해 좀 생각해보게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