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폴리아모리 에세이
홍승은 지음 / 낮은산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이 뭘까.

 

나 역시 한때 이 질문을 붙잡고 늘어진 적이 있다.
대체 사랑이란 게 무엇이기에
나 자신을 이토록 초라하고 볼품없이 만드는지.
저 사람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아니게 될까봐
끝없이 불안해하면서 나의 온 에너지를 한 사람에게 쏟아붓다가
지레 내가 먼저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만약 일대일 독점이라는 정상연애 문법에서 벗어나
조금 달리 생각해볼 수 있었다면
나는 그때, 덜 집착하고
관계의 넓이를 확장하는 데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을까.

 

연애할 땐 세상에 오로지 둘밖에 없다는 듯
세상과 단절하고 둘만의 성을 높다랗게 쌓느라 바빴다면,
결혼은 또 달랐다.
주 7일을 매일같이 만났더라도 '같이 살기'는 연애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었다.
애쓰던 마음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상대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기보다는 상대의 말 한마디에 뾰족해지곤 했다.
나보다 커보이기만 하던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못마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독점적 관계가 연애 때는 '불안'의 요소였다면,
결혼한 뒤에는 '불만'의 요소가 되었다.
긴장 없는 관계는 쉽게 권태로 미끄러져버렸고,
불안 없는 불만은 사랑의 텐션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는 '폴리아모리'라는 비독점 관계를 살아가는
홍승은 작가의 세 번째 책이다.
작가의 앞선 두 권과는 상당히 다른, 생소한 주제여서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책을 펼쳤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이 책은,
폴리아모리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사랑에 대해, 함께 살기에 대해, 모든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준 책이었다.
누구와 만나든 나와 다를 수밖에 없는 타인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정치적인 부분에서까지 다양한 질문과 생각을 일으킨다.

 

 

세 사람은 상대를 소유할 수 있다, 소유해야 한다, 는
익숙한 연애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대화와 합의와 이해의 과정을 밟는다.
무엇보다 사랑은 '노동'이라는 말,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노동이 서로를 살아 있게 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 마냥 편안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사랑한다는 그 이유로 다른 어떤 관계보다 갈등이 첨예해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갈등은 어느 한쪽이 노동(감정 노동이든 물리적 노동이든)을
소홀히 할 때 일어난다.
사랑한다면 노동하라!
서로를 위한 노동을 멈추는 순간, 사랑도 멈춘다.

 

책에 수록된 두 편의 인터뷰는
그동안 내가 관계에 대해 얼마나 게으르고 좁은 상상력에 머물러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함께 사는 두 애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콕콕 박혀왔다.
"노력을 통해 가꾸지 않는 관계는 폭력이나 불평등으로 연결되기 쉽다"는 말,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사는 거지, 라는 태도가 가장 손쉬운 자기 합리화"라는 말.

 

 

"세 분은 폴리아모리 모범 사례"라는 누군가의 말에
세 사람은 손사래 쳤다지만,
이들의 배우고자 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감각, 차별에 대한 예민함,
평등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관계라는 점은 분명하다.
자극적인 소재로 미끄러지지 않고 '관계' 자체에 대한 공감의 접점을
이토록 풍부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세 사람의 자질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가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누구나 그런 방식의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누구와 어떤 형태로 살든 이들처럼 관계의 평등과 사랑의 지속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이렇게 소란스러울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 21세기 페미니즘에 대한 7가지 질문
강남순 지음 / 한길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그대로 21세기 페미니즘을 마주한 우리에게 어떤 질문과 과제가 던져져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책이다. 페미니즘이 현대를 어떻게 관통해왔는지 조목조목 짚어주는 페미니즘 교과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젠더 Gender Chaeg Special 1
월간책 편집부 지음 / 책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잡지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닌데,

'젠더'라는 주제 때문에 구입.

젠더정체성과 성적지향의 개념이 조목조목 설명돼 있어

아주 유용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2장 '젠더의 얼굴들'의 기사들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표지의 사진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리사 리베라의 작품인데,

내지에서 그녀의 파트너를 뮤즈로 삼은 '뷰티풀 보이' 작업을 더 볼 수 있다.

지정성별 남성인 그녀의 파트너는 여성성의 힘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둘은 프로젝트를 통해 "아름다움의 계보 안에서" 자기 안의 아름다움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지속하고 있다.

 

마블 해리스의 기사(마블 해리스 글, 사진)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유튜브에서 그의 영상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소녀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그의 몸 안에 기거하는 존재는 자신이 "여성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가슴을 제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기나긴 성전환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조선의 퀴어" 아장맨을 비롯한

'21세기의 앵무새'로 대표되는 소수자들의 인터뷰도

한 꼭지 한 꼭지가 소중하다.

 

잡지 한 권에 무수한 질문과 도전이 꽉꽉 눌러 담겨 있다.

 

"만약 우리 모두에게 이런 양면성이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가 언제든 이렇게 변화를 거듭할 수 있는 자아들이라면?

어째서 우리의 성은 두 가지로만 분류된 것일까?

우리에게 더 많은 가능성들이 있었다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아무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 존엄하고 아름다운 이별에 관해 묻는 애도 일기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모녀서사가 많이 쏟아져나오는데, 이게 참 흥미롭다. 엄마가 딸에 대해, 딸이 엄마에 대해 할 얘기는 많은데 부자서사(?)는 별로 보지도 못했거니와 상상이 잘 안 돼서이다. 엄마를 향한 애와 증의 경계가 ‘죽음‘ 앞에서 흐릿해지는 과정이 무척 솔직하고 디테일하게 펼쳐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하루키 - 그만큼 네가 좋아 아무튼 시리즈 26
이지수 지음 / 제철소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구역의 하루키스트는 나라고 외칠 자신은 죽어도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달랑 하루 만에 기획서와 에세이 두 꼭지가 뚝딱" 써졌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어느 누가 이보다 더 하루키를 잘 쓸 수 있을까?

 

이지수 작가는

하루키 때문에 히라가나도 모른 채 일문과에 진학하고,

하루키 때문에 "와타나베가 탔던 보잉 747에 몸을 싣고",

하루키 때문에 어느날 불현듯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원서를 들고 송정역 맥도날드로 향해,

하루키 때문에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번역가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다.

 

"나의 이삼십대는 하루키의 문장에서 출발하여 예상치 못한 경로를 거쳐 예기치 못한 변화를 겪은 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 느낌이다. 그렇다면 그 문장으로부터 가장 멀리까지 갔다가 유턴했던 송정역 맥도날드 2층이 내 인생의 반환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우연히 하루키 덕후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십대부터 일본 유학 시절, "연애니 청춘이니 하는 푸릇푸릇한 단어"로부터 멀어져, "더럽게 고생스럽고 피눈물 나게 힘든" 육아 현실에 이르기까지 평범하지만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삶의 순간 순간 함께해 준 하루키를 절묘하게 버무려 냈다. 단맛과 짠맛이 기막히게 균형을 이룬 '단짠단짠'한 에피소드로 들어가 어김없이 담백한 하루키의 문장으로 빠져나오는 솜씨에 매번 감탄하며 읽었다.

 

고양이를 기르고, 운동화 신은 남자를 좋아하고, 파스타를 자주 해 먹고, 우물만 보면 반가워하는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키 찬양으로 책을 채웠다면, 조금은 미심쩍어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끝으로, '나의 하루키' 혹은 '나의 청춘'에 결연히 이별을 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하루키스트'들조차도 멘붕에 빠뜨린, 어쩌면 팬들의 의리가 이뤄낸 판매라고도 할 수 있을 <기사단장 죽이기>를 한 챕터로 가져와("팬심은 무엇을 어디까지 참게 하는가") 눈감아버릴 수 없는 하루키와 팬 사이의 간극까지 솔직하게 짚어낸다. (나 역시 이 두꺼운 두 권 짜리 책을 육아 시기에 꾸역꾸역 읽어내면서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ㅠㅠ) "하루키가 이름만으로 책을 파는 작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팬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책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안 살 수가 없는 책"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하루키스트'들이라면 다 같을 것이다. 

 

이 작은 책 안에 하루키라는 대양이 넘실거린다.

한때 그 푸른 물에 몸을 담그고 유영하며 자유가 뭔지도 모른 채 한없는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현실은 '자유'라는 단어와 급속도로 멀어져갔다. 그토록 아끼던 하루키의 산문집이나 소설을 들춰보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키가, 아니 하루키를 읽던 그 시절이 얼마나 반짝이던 시간이었는지 새삼 떠올라 조금 슬프고 조금 설렜다. 주말에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다시 펼쳐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