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티시아 - 인간의 종말
이반 자블론카 지음, 김윤진 옮김 / 알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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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유명했다가 덧없이 사라진 그녀의 운명은 묘하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녀는 죽은 순간에야 태어났다.
P.9



우리는 지금도 뉴스를 통해 많은 사건사고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 그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이 세상에 존재했던 누군가를 알게 되죠. 레티시아 페레 또한 그랬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불행하게 자라왔는지 많은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녀를 알게 되었죠. 이 책은 레티시아라는 한 소녀가 태어나고 자라며 죽는 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기록입니다. 모두 실화인 거죠.

레티시아 페레라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레티시아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어머니 실비는 아버지 프랑크는 그다지 좋은 부모는 아니었죠. 실비는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에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레티시아와 쌍둥이 언니 제시카를 낳아 기르다 아이와 자신을 폭행하는 프랑크와 헤어져 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우울증에 빠지고 쌍둥이 자매는 아버지 프랑크가 키우죠. 좋지 못한 직업을 가졌든 아니든 프랑크는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폭력적이었죠. 결국 이 자매는 고아원으로 가게 되고 그러다 위탁가정인 파트롱의 집에서 자라게 됩니다.

파트롱의 집에서 자라면서 자매 그 전보단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비록 파트롱이 자매를 너무나도 억압했지만요. 어쨌든 레티시아는 18살이 되었고 열심히 직업교육을 받았으며 한 호텔에서 일을 했고 그녀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었죠. 하지만 레티시아는 어느 날 새벽 쓰러진 스쿠터만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녀를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녀가 살고 있던 지역은 그녀의 실종 사건으로 떠들썩해집니다. 그러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토니를 찾아내고 그가 훔쳐서 타고 다니던 차에서 레티시아의 피가 발견되면서 그녀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점점 낮아졌죠. 그녀를 납치,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토니는 꽤나 악독하고 머리가 좋은 인간이라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비웃습니다. 사건은 점점 커져 사르코지 대통령까지 언급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이 책에도 나오다시피 사르코지가 정말 레티시아가 걱정이 돼서 그렇다기보단 이 일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어떤 위기감을 심어주고 들고일어나게 만들며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뭔가를  바꾸려는 의도였죠.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는 레티시아는 토니의 삶을 추적하던 중 그가 잘 가던 호수에서 발견이 됩니다. 그 안에서 토막이 난 레티시아를 찾아낸 것이죠. 그러면서 레티시아 자매를 키운 파트롱이 사실은 그녀들을 성추행하고 강간해왔단 사실이 밝혀지게 되죠. 어린시절부터 학대를 당하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자라 불안정한 자매를 파트롱은 안전한 자신의 집을 댓가로, 자매들은 그 안에서 살 수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묵인하며 자라온 것이죠.

레티시아의 경우는 스토리텔링이 기가 막히게 용이했다. '괴물'의 손아귀에 떨어진 '천사', '미치광이'에 의해 살해된 '순결한 소녀', 기분 나쁜 커플로 묶인 두 인물의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관계도에서 희생자와 살인자는 죽음 속 단짝이 된다. 소녀의 실종과 발견되지 않는 시신을 둘러싼 서스펜스, 사건의 재빠른 정치화, 비탄에 빠진 가족들.. 이만하면 소비될 준비가 된 이야기다.
P.129

저자는 살인자 토니의 삶 또한 이야기합니다. 토니의 어머니는 친부에 의한 성폭행으로 토니의 형을 낳았고 한 남자와 결혼을 해 토니를 비롯한 다른 남매들을 낳았지만 토니 친부의 폭력성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죠.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던 토니는 그것이 참 싫었습니다. 그 일은 어머니에 대한 강한 미움을 가지게 했고 이후 토니는 정상적인 여성과 올바른 관계를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만나는 여자들은 매춘부들과의 돈을 댓가로 한 만남들이 대다수였고 여자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그의 폭력성때문에 오랜 관계가 지속되지 않았죠. 레티시아를 만나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왜 살해한 건지 토니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발견된 레티시아의 시체에서 수많은 폭행의 흔적이 나타났기에 죽기 전까지 레티시아가 큰 고통을 당했다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토니는 수많은 전과를 가진 범죄자였지만 거기다 여혐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죠.

어쨌든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범죄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된 소녀가 살아있었을 적의 삶과 그녀의 주변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거기다 어느 여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여성을 혐오했던 남자가 저지른 사건이기에 더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책은 가독성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사건의 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거나 전기처럼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며(레티사이의 사건 수사 진행 - 그녀의 어린 시절 - 그녀의 흔적(페북 등), 주변인의 증언 등을 오간다.) 이야기하기에 집중력을 잃고 책을 읽는다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쉬이 읽어낼 수 있는 책은 아니죠.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레티시아들이 죽어가고 있을겁니다. 다만 그녀들은 대중들에게 존재하지 않을 뿐이지요. 마지막으로 책 속의 추천의 말을 대신 전합니다. 레티시아는 결국, 언제나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모든 여성이자, 우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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