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나오미가 말했다. 물론 내친김에 한 말일 뿐이었지만 입 밖에 낸 순간 죽인다는 선택지가 불쑥 마음속에 출현했고, 그것이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져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다쓰로가 살아 있는 한 가나코는 계속 위협을 받는다. 그렇다면 다쓰로를 죽이는 것은 중요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중국인이었으면 그렇게 했을거라고 아케미가 말했었다. - P. 123
나오미와 가나코는 이시카와 현 출신으로 서로의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사이이다. 같은 호쿠리쿠에서 상경한 것도 있고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껴 만난 그 날 친해진 사이였다. 어느날 나오미는 가나코와 만날 약속을 잡았지만 가나코의 사정으로 만남이 취소가 된다. 딱히 약속을 해야지만 만날 사이도 아닌지라 가나코의 집을 방문했다가 나오미는 가나코가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린시절부터 엄마가 아빠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하는걸 보며 자란 나오미는 가나코에게 남편과 이혼을 하라고 얘길 하지만 가나코는 남편이 사과를 했으니 다신 이러지 않을거라며 참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 폭력은 계속된다.
불미스러운 일로 만나게 됐지만 중국인 리아케미는 나오미에게 말했다. 상하이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보복을 한다고 말이다. 본인이 할 수 없다면 부모 형제가 대신 보복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는 가나코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라면 잡히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남편을 죽일거라고 얘길한다. 그 얘길 듣고 난 후 또다시 폭력을 당한 가나코의 모습을 보고 나오미는 가나코에게 남편을 죽이자고 얘길한다.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이었지만 내뱉고 나니 이것은 이혼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되었다. 때마침 리아케미의 가게에서 일하는 일꾼 중 하나가 가나코의 남편과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았고 불법체류자여서 일본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를 이용하기로 한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할때는 나약하고 수동적인 사람이었던 가나코도 살해를 결심하면서부턴 나오미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뭔가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둘의 계획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이 계획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뭔가 완벽한 계획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CCTV의 존재를 이 둘은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으며 은행에 다니는 남편이 저금한 돈이 500엔이 있는데 1000엔 때문에 상하이로 도망갔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나코의 시누이 요코가 흥신소 사람들까지 써서 다쓰로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가나코가 자신의 오빠를 죽였음을 확신한다. 이제 이 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제 경찰서에 출석해야하고 뭔가 시간을 더 끌면 이제는 둘의 범죄가 발각될 수도 있다. 이 책과 비슷했던 델마와 루이스처럼 죽음을 택할 것인지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나코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린시절부터 가정폭력을 보면서 자라왔고 폭력을 당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뭔가 내심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이해도 됐다. 이혼을 하자니 경제적인 것들이나 여러 가지가 걱정이 되고 무엇보다 혼자 선다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가나코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준 나오미가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물론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범죄이긴 하지만 말이다. 잠자리를 거부한단 이유로 또다시 맞고 그래서 허락을 해줬다가 결국엔 아이가 생겨버린 가나코는 아이와 함께 행복한 날들을 상상하며 힘을 낸다. 그리고 나오미와 함께 떠난 상하이에서 이 둘은 행복했을까를 생각해봤다. 적어도 다쓰로와 함께했던 날보단 훨씬 행복했을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