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다이아나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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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스 룩스, 피르피르르. 어느 누구도 이 다이아나를 옭아맬 수 없어. 내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나 하나뿐……. 나만이 내가 나아갈 길을 가리킬 수 있어…….”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수면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레이스 같은 잔물결이 호수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변화가 천천히 숲과 다이아나를 감쌌습니다. 호수가 달을 고스란히 삼킨 것처럼 빛나면서 숲 전체를 환하게 비추기 시작한 것이죠. 가슴 속에 딱딱한 돌처럼 응어리져 있던 것이 천천히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닫혀 있던 목이 열리고 숲의 신선하고 시원한 공기가 폐로 흘러들어가는 것도 느낄 수 있었죠. 손발에 피가 힘차게 돌기 시작했습니다. 크게 소리 내어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입니다. 그래요. 맞아요. 옛날에 다이아나는 이렇게 언제든 춤출 수 있는 신나고 즐거운 기분으로 살았었죠. 슬프고 괴로운 것은 줄곧 고급한 감정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다이아나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주를 풀었어! 나 혼자 힘으로!” - P.289 -

 

책의 저자인 유즈키 아사코는 나에겐 아주 생소한 이름의 작가였다. 사실 일본문학을 많이 읽는 편이긴 하지만(한국문학에 비하면 월등히 많이) 매번 읽는 사람들의 작품들만 읽는 편이니 내가 읽는 몇몇의 작가를 제외하면 그다지 많이 알고 있는 편은 아니다. 거기다 요즘은 인문 쪽으로 많이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읽을 시간이 없어 읽지 못하고 있고 이 작가의 책이 우리나라엔 <서점의 다이아나>뿐이니 일본원서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유즈키 아사코는 만날 수 없는 작가였다. 그래도 그녀의 다른 작품은 만난 적이 있었던 게 일드 <런치의 앗코짱>의 원작 작가란다. 이 두 작품으로만 이 작가를 알게 됐지만 뭔가 느낌이 오긴 한다. 런치의 앗코짱도 소심하지만 성실한 사와다가 자신의 상사인 아츠코를 만나면서 삶에 긍정정인 영향을 받게 되고 변화하는 이야기인데(그 계기가 점심 도시락이다.) 서점의 다이아나도 책을 계기로 만난 다이아나와 아야코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서로 변화하는 이야기이다.

 

다이아나는 학기 초마다 있는 자기소개 시간을 너무 싫었다. 일단 자신의 이름이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일본 아이의 이름이 아니라 다이아나인 것도 싫고 이것을 한자로 하면 큰 구멍이란 뜻을 가진게 더 싫었다. 다른 엄마와는 다르게 술집에서 일하느라 굉장히 화려한 외향을 가진 엄마도 창피했고 그런 엄마가 하라고 해서 이제는 거칠어져버린 금발의 머리도 너무 싫었다. 화려하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져 세보이지만 사실은 소심하며 혼자 책 읽기를 좋아하는 다이아나였다. 아야코는 도자기 인형처럼 예쁘고 수수하고 단정한 아이였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아빠와 사람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엄마가 있었고 이 둘은 다이아나가 부러워하는 교양 넘치는 부모님이었다. 하지만 아야코는 마음대로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늘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어야했고 가야할 중학교는 정해져 있으며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유행하는 뭔가를 가져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 있는 두 소녀는 새학기 자기소개 후 다이아나의 이름을 비웃는 아이들 앞에 아야코가 앞에서 다이아나는 빨간머리 앤의 친구이름이고 자신은 그 이름이 부럽다고 이야기 하면서 친해지게 된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둘은 베스트프랜드가 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서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달라지고 아야코가 다이아나가 자신에게 뭔가 말하지 않는 것이 생겼다는 섭섭함을 느끼면서 사이가 멀어진다.

 

서로 멀어진 채 다이아나는 불량한 학생들이 많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자신의 친부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나중엔 원하는 대로 서점에 취업을 한다. 광고판을 잘 만드는 사람으로 유명해지기도 하고 서점 블로그에서 서평도 쓰며 여전히 책을 열심히 읽는다. 엄마와는 예전보다 점 더 싸우게 됐고 결국은 독립했으며 엄마와는 멀어진 외할머니를 찾아가 엄마 외의 다른 가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친부를 만나지 못했다. 아야코는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명문대에 입학을 했다. 하지만 늘 보호받는 존재였던 아야코는 난생 처음 혼자 세상에 나가게 됐고 거절도 잘 못해 술 먹는 클럽에 갔다가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당하고도 아야코는 이 선배와 사귀게 된다. 사귀었으니 강간은 아니라는 위안을 하며 말이다. 이 클럽엔 여전히 나가고 있고 옷은 선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입는다. 당연히 외박이나 늦게 귀가 하는 일이 잦아졌고 부모님과 트러블이 생겼다.

 

그래서 이 둘은 어떻게 될까? 그 해답은 맨 위에 써 놓은 책속의 책처럼 다이아나와 아야코는 저주를 풀어버린다. 다이아나는 친부를 찾았고 그의 모습을 보고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당당히 고개를 들고 당신이 말한 행운이 가득한 아이 다이아나라고 말한다. 아야코 또한 그 클럽에서 나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그 클럽을 고발했고 부모님과도 가까워졌다. 이 둘이 서로 다시 만나게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우리 모두에겐 보이지 않는 각각의 저주가 있다. 마녀의 저주가 아닌 나를 내 모습 그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저주 말이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조금씩 마음이 성장해가다보면 나도 언젠간 이 둘처럼 저주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중간에 절교를 해 멀어지는 일이 있었지만 그를 통해 둘은 성장을 했고 여전히 영향력을 발하는 모습을 보며 다이아나와 아야코와 같은 친구사이가 참 부러워졌다. 두 소녀의 성장기, 뭔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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