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아마 독서모임의 선정도서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이 책을 읽을 날은 절대 오지 않았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이 책이 내가 싫어하고 기피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작가의 책인데다가 80년대 군사정권이라는 시대배경, 남겨진 자의 평생의 슬픔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들...... 이런 책들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긴 하지만 책 속의 인물들처럼 나 또한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때 쯤이면 진이 빠져버리고 만다. 알아야하고 기억해야함은 머리로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른척 마냥 행복하고만 싶어 자꾸만 피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이런 행복이 그들의 희생 때문에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5.18의 이야기다. 5.18이라는 말만 들어도 일단 어떤 내용일지 짐작은 간다. 누군가는 왜곡해서 알고 있을테지만 실제로 벌어졌던 참혹한 이야기니 말이다. 빨간 책방 팟케스트에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때 당시의 참혹한 상황이 아닌 인물들의 깨끗함에 더 주목했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참혹한 상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게 사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년은 동호이다. 첫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며 제목 소년이 온다의 소년도 바로 동호를 말한다. 민주화운동이 시작되고 자신의 집 한켠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친구 정대의 누나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정대와 함께 동호는 누나를 찾으러 함께 나간다. 하지만 그길로 동호는 정대를 영영 잃어버렸다. 동네사람들이 군인들의 총에 맞는걸 봤대요.. 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정대가 총을 맞는걸 목격한건 동네 사람이 아닌 동호였고 총 맞는 사람들을 데리러 나갔다가 또 총을 맞는 사람들을 보고 무서워 정대를 데리고 오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 죄책감이 동호를 상무관에서 시체들을 닦고 수습하고 유족들과 만나게 하는 일을 하게 했다.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동호이기에 둘째 형과 엄마는 계속 찾아와 집에 가자고 하지만 동호의 고집이 여간 센게 아니었다. 꼭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하는 동호의 말에 다같이 저녁을 먹자고 이야기 한 엄마였는데 엄마는 그길로 동호를 영영 잃어버리고 만다.

2장부터 6장까지 각 장마다 주인공은 바뀌지만 그들은 모두 1장 동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동호는 계속 등장을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2장은 동호 친구 정대의 이야기로 정대는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닌 영혼의 상태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시체들 사이에 깔려 점점 썩어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그것을 괴로워 하고 또 그것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동호와의 추억과 누나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3장에선 동호와 함께 상무대에 있었던 은숙의 이야기로 형사에게 빰 7대를 맞고 그것을 잊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결국은 그것을 잊지 못하겠노라 이야기 한다. 4장에선 끌려갔던 이들이 어떻게 고문을 당했는지, 5장은 여성노조원들에게 똥물을 뒤집어 씌웠던 동일방직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내용이 등장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모든 장 중에서 가장 슬프고 눈물나는 장은 6장이다. 곱고 소중한 아들 동호를 잃어버린 엄마의 이야기에 첫 시작부터가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차마 읽을 수 없어 대충 넘기며 보다가 동호가 엄마에게 밝고 꽃이 핀 길로 다니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동호가 태어났을때, 젖을 물기 시작했을때, 어릴땐 어땠는지 자라면서 또 어떤 기쁨을 줬었는지.... 금쪽같은 내 아들을 죽여버린 사람에게 엄마와 아빠, 같은 아픔을 가진 유족들과 어떠한 일을 했는지...... 어떤 한 책에서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라고 했는데 아무리 묻어버리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덮어버려도 죽은 자식이 자꾸만 나와 잊을 수 없다라는 말을 크게 공감했던 이야기였다. 사실 지금도 6장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져 내가 이것을 정독할 날이 올까 싶다.

다시 빨간책방 팟케스트의 한강 작가가 나왔던 이야기를 하자면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고민은 4장에서 잘 드러난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게 권력 욕심에 의한 잔인한 일을 당한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건지, 우리들이, 사람이 존엄하다는 것은 그냥 착각이 아니었는지,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당하는 것이 역사 속에 증명된 인간의 본질이냐고 묻는 질문은 아마 읽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다시 이 이야기들을 잊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근대사의 비중을 줄인다는 기사를 보니 얼마나 이 이야기들을 왜곡하며 알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하는 걱정도 든다. 이게 몇백년 전의 이야기도 아닌 고작 35년 된 이야기인데 말이다.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몸은 영영 떠나갔지만 그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 마음 속으로 소년은 돌아왔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은 여전히 계속 될 것이다. ​이 책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가끔, 아니 자주 그들을 잊고 살아가는 날이 있겠지만 적어도 똑바로 알고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은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4장, 쇠와 피 중-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4장, 쇠와 피 중-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꽃은 양초 불꽃들이.

-3장, 일곱개의 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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