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한걸음 -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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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나는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 시절의 나에겐 <어른>이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내 마음대로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아무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삶, 이 얼마나 멋지단 말인가. TV속에 비춰지는 어른들의 삶은 화려하고 즐겁기만 했기에 그러한 삶은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제 내 나이 스물 여섯.. 나의 삶이 내가 바라던 대로 되었냐 물어보면 그 대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예전엔 맘 나눌 친구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친구에게도 속마음을 다 털어놓기가 힘들고 친구와 나의 모습을 비교하며 속으론 친구의 삶을 무시하고 내가 더 괜찮다며 위안삼는 이중인격같은 내 모습이 참 한심스럽기도 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다. 독하게 마음먹고 인생이라는 밭을 다 갈아엎기 전에는 말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P.67>

 
이제 서른 셋인 연수의 삶은 불안함의 연속이다. 몇년동안 사귀던 K와 헤어지고 이제는 시간이 널널한 싱글이 되었고 불안한 소식들만 들려오던 회사엔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나와버렸다. 그래도 집에서 시간을 못 보내는 이유는 불안한 미래 때문도 있지만 퇴직 후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울해 하시고 취업사이트를 보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 연수의 사표 소식에 갱년기 증상이 찾아 온 엄마는 시집은 어떻게 가냐, 이제 돈을 벌어야지... 라고 이야기하고 눈치없는 고모는 전화를 해 좋은 남자 만나 시집 잘 간 자신의 딸 자랑에 늘 바쁘기만 하다.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회사, 술자리, 집, 갈곳도 많고 늘 바쁘기만 했던 연수의 삶은 이제 집과 도서관으로 작아졌다. 서른 셋, 이 나이에 연수는 그토록 과감해도 되는걸까?

 
우리의 괜한 짓은 과연 앞으로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P.98>

 
뭔가 안정적인 삶이 될거라 믿었던 서른의 나이에 배신당한 연수는 독하게 인생을 갈아엎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것이 사표를 던져 백수가 되었고 집에서 구박받는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연수의 이러한 삶에 나는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지금 이대로 살자니 너무 불안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워 사표를 던질까 하지만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미래가 불투명해 이제는 너무 겁이나 생각과 말만 할뿐 감히 시도도 해보지 못하는 일을 과감히 시작해버린 연수의 삶에서 말이다. 한번 살아보고 맘에 안 들면 다시 인생을 되감기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도 과감하게 인생이라는 밭을 다 갈아엎어 버릴텐데 말이다. 

 
이왕 회사를 그만둔 거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연수는 찾아가기로 한다. 이제 자기 자신을 향해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무작정 대학 도서관에 가 예전에 자주 이용하던 자리에 앉아 노트에 관심분야를 쭉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분야의 책 중 읽어볼 만한 것들의 리스트를 짜고 일단 책부터 읽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러면서 연수는 생애 최초의 자발적 학구열을 느낀다. 

 
예전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장담할 수만은 없다. 다만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애쓸 뿐이다. 언제나 돌다리만 두드려보면서 살 수는 없지 않나. <P.152>

 
생애 최초의 자발적 학구열을 느끼고 도서관에 출근하며 살아가는 연수의 삶은 그 학구열을 느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제 얼마후면 환갑이기에 없는 돈에 연수는 아버지 환갑을 치뤄야했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촌은 사춘기가 찾아와 투정을 부린다. 다 키워낸 자식들 남들에게 자랑도 못할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인 동창 동남은 결국 자살을 선택해 연수를 슬프게 만든다. 앞으로 연수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연수의 이야기처럼 연수는 그저 그렇게 되기 위해 애쓸 뿐이다.

 
서른살이란 나이는 후회의 연속인것 같다. 모든 책들이 20대에겐 잘못된 서른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라며 자기계발서들이 나오고 서른에겐 후회되지만 위안 삼으라며 자신도 서른이라 말하는 성공한 삶들의 이야기와 심리적으로 위안되라는 심리서들이 나온다. 그렇게 서른이란 나이는 슬프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은 서른 살을 맞이하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연수의 삶에서 한가지 방법을 발견한다. 예전보다 더 나아지거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위해 애쓰는 것, 나에게 주파수를 맞추고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보라는 것, 숨을 가다듬고 일보 전진하는 것들 말이다. 앞으로 나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숨을 가다듬고 쿨하게 한걸음 나아가보자.

 
나의 서른셋 이후는 과연 어떤 풍경이 될까. 그것이 궁금해졌다. 나는 한번 멋지게 꾸려가보기로 했다. 숨을 가다듬고 일보 전진하면서! 절대로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막을 내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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