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혼자 사는게 살벌할 때도 있지만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고독한 건 더 살벌해요.

 

얼마 전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막을 내렸다. 그 드라마를 제대로 본적 없지만 그 유명한 <똥 덩어리 바이러스> 동영상은 본적이 있다. 음대 출신이지만 결혼 후 시어머니 병수발에 남편 뒷바라지, 아이들을 키우느라 첼로를 만져보지도 않은 정희연은 두근대는 맘으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실력이 뛰어나고 오만한 지휘자 강마에는 정희연씨의 연주를 듣고 똥 덩어리라고 한다. 말끝마다 아줌마 아줌마 하는데 정희연씨는 이렇게 외친다. “나 아줌마 아니야, 난 정희연이야” 굉장히 우습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참 슬퍼지기도 한 장면이었다. 

 

 

한 아이가 축복을 받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고 그 아이는 곧 이름이 생겼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곧 결혼을 했고 그 후로 그 아이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로 불린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남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그 후 누구의 엄마로 불리고 그 아이가 자라 그 아이의 아이가 태어나면 누구네 할머니로 불리고……. 여자의 삶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건 결혼 전까지 만일까?



<도피행>에 등장하는 타에코 역시 결혼 후 자신의 이름을 잃었다. 나이가 들자 남편과 아이들은 타에코를 무시했고 뭐든지 다 갱년기 증상으로 받아들였다. 타에코를 무시하지 않고 사랑해주는 존재는 강아지 포포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아이의 괴롭힘에 포포는 그 아이를 물어 죽이는 사고가 생긴다. 여론은 개가 아이를 죽였다며 키운 주인까지 비난했고 가족들은 포포를 안락사 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 후 이 책은 타에코가 포포를 데리고 가출을 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가는 길에 맘 좋은 사람을 만나 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나쁜 사람 때문에 포포가 다시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친척아이의 집에 찾아가지만 그 친척도 포포를 거부하고 결국 타에코는 친척이 감추고 싶었던 치부를 들쳐 내며 협박 아닌 부탁을 하게 된다. 결국 남편이 타에코를 찾아오고 타에코와 포포는 산으로 도망가다 한 별장을 만나게 된다. 천애고독에 까칠한 성격의 도공을 이웃으로 안식을 찾게 된 포포와 타에코…….  하지만 그 안식도 이내 끝나고 만다. 바뀐 생활 탓에 노견이었던 포포는 여러 질병을 얻게 되고 타에코는 몇 년 전 수술을 했던 것이 완치가 된 것이 아니라 생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타에코는 먼저 생을 떠났고 포포는 도공이 키우게 된다.




<도피행>을 읽으며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또한 어릴 시절 자신의 이름으로 불렸는데 어느새 그 이름은 주민등록증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누구네 엄마로 불리는 엄마의 모습 말이다. 그리고 이내 두려워졌다. 나도 결혼 후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 나의 모습이 타에코의 딸들과 다르지 않기에 미안한 맘이 가득했다. 오늘은 꼭 엄마한테 전화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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