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예들
심아진 지음 / 솔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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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예들/심아진/솔출판사



1999년 중편 「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 」(『21세기 문학 』)로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 숨을 쉬다 』, 『그만, 뛰어내리다 』,『여우 』, 『 무관심의 연습 』, 『신의 한수』(김용익 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장편소설 『어쩌면, 진심입니다 』가 있다. 2020년 '심순'이란 이름으로 쓴 동화 「가벼운 인사 」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동화집으로『 비밀의 무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I 』,『행복한 먼지 』등이 있다.

그들은 생에 예의를 갖추지도 않고 배려심이 깊지도 않은 채찍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그저 어떤 종류의 채찍이냐 하는 것뿐. 아홉 가닥 채찍이라 해서 덜 아픈 게 아니고 서른아홉 가닥 채찍이라 해서 더 아픈 게 아니었다. (…) 채찍의 끝에 날카로운 뼛조각이 달렸든 가시, 쇳조각, 쇠구슬이 달렸든, 임계점을 벗어난 고통의 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예들/심아진/솔출판사)


후예들/심아진/솔출판사



"영웅의 후예들은 다른 이가 가진 것을 탐내는 법이 없었다.

누군가가 가진 건강한 치아나 화려한 장신구나

으리으리한 집을 욕심내지 않았다.

다른 이가 목표로 하는 위대한 업적, 마음의 평화,

가정의 안락함도 모두 관심 밖이었다."

후예들/심아진/솔출판사



새로운 일을 시작한 나에게 새로운 관심거리가 『후예들 』을 읽으면서 머릿속이 환기가 되었다고 표현하면 좀 더 나을까 싶을 만큼 자유로운 영혼의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매일 아직은 내가 직장에서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든다고 생각한다. 10년 차, 5년 차 이상인 분들과 일을 배우며 적응해 가는 단계가 과연 쉽지는 않다. 그러기에 더 뜨내기처럼 느껴지는 일상을 경험하고는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이 헝가리이다 보니 귀연이 그곳에서 겪는 불편함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혼자서 공감도 해본다.

"이방인이되 이방인처럼 살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요세핀의 도움 때문이었다."라는 글귀만 봐도 알 수 있다.

『 후예들 』에서 '후예들'이란 영웅들의 후예들인데, 그 영웅들과 후예들이 바로 투란족인 것이다. 그들은 기마 유목민이었는데, 이 소설에서 작가가 여러 차례 묘사하고 있다. 기마유목민의 특징인 머무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들은 집을 짓지 않았고 가축이나 채소를 기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러니까 사람마저도 소유하지 않는 게 그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다보니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머물러 사는 사람들은 그들은 종종 가장 불친절하며 극단적으로 인간미가 없는 사람들이라 몰아세웠다. 다른 꿍꿍이를 감췄거나 그저 미쳤을 뿐이라 여기기도 했다. 겁이 많은 그들은 제 불행의 근원을 알지 못했으므로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이를 갈았다. (후예들/심아진/솔출판사)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이 원하는 단 한 가지는,

아무런 구속 없이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거였다."

후예들/심아진/솔출판사

엄마인 귀연과 헝가리인 프란츠 사이에서 태어난 요세핀은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독립하고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국으로 갈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돈이 쉽게 모이지 않아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것마저도 안되니 엄마가 갤러리 하려고 모은 돈을 달래 보기도 하고, 이혼하면서 양육비로 받은 식당의 삼 년 치 몫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통에 귀연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프란츠에게 상의라도 해보고 싶어 한다.

요세핀은 이렇듯 무언가에 그리 갈구하거나 정착을 원하지 않는 인물이고,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여자이다.

귀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함께였고 그게 아닌 다른 것으로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두렵거나 외롭거나 슬프거나 화가 날 때, 귀연은 그리는 걸로 마음을 달랬다. 타인에 대한 방어도 공격도 그림으로 해결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자의 세계에서 처절하게 아귀다툼을 벌였을 때, 마침내 가족이라는 살점이 다 찢기고 너덜너덜한 아픔만 남았을 때도 그림이 있어서 살 수 있었다.

"나만 생각하고 살 거야, 나만." 스물두 살에 한국을 떠나면서 귀연이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쉽지 않았다.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그림은 귀연의 모든 감각이었고 신체였으며, 영혼 자체였다. 죽음과만 맞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삶이었다.

이렇게 귀연이 싫어서 떠나온 한국을 가려는 요세핀을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심정이 나타났다. 차라리 다른 나라를 간다고 하면 반대하지 않을 텐데 굳이 모든 걸 버리고 온 한국으로

가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요세핀은 제가 떠나도 엄마가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라는 문장에는 저자가 문장에 또 작가를 개입시켰다. 색다른 방식을 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 점에서 『 후예들 』은 소설에 대한 소설에 대한 소설, 곧 메타-메타 픽션이다. 저자가 말하길 "한국에는 아직 이런 소설은 지금까지 없었다."라고 한다. 요세핀과 함께 영웅의 후예의 특징을 잘 구현하고 있는 존재로,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혼어미가 있다. 소설의 주요 인물인 효령의 눈에 흰옷 입은 의문의 노파로만 나타나는 유령 같은 존재인 혼어미는 "일생에 단 한 번도 홀로이지 않은 적이 없는 자"다.

『 후예들 』에서 이런 영웅의 특징을 가장 잘 구현하는 있는 인물은 요세핀일 것이다. 한국인 이귀연과 오스트리아인 프란츠 슈나이더 사이에서 태어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자란 요세핀은 고교를 졸업한 뒤 삼 년이 흐르도록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적이 없는, 말하자면 일종의 '루저'인데, 그가 구현하고 있는 영웅의 후예의 특징 덕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에게도 가장 애착하는 캐릭터이다.


"『 후예들 』은 정착하지 않으려는

자유로운 영혼들에 대한 찬가다."

차 례

D-12

증명할 수 없는 세계

로마의 자비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꿈과 신화

D-11

영웅과 후예들

신뢰로 보답하는

무가치한 사냥

떠나야 할 때

D-10

채찍의 행보

분홍빛 인생

만만찮은 대결

D-9

홀로 누워 자는 사람들

엄마라는 사람

폐허의 잔상

머르기트 섬의 산책

D-8

달의 친구, 별의 연인

너는 너다

나만 생각할 거야, 나만

용감하고 뻔뻔한 선택

D-7

구야쉬 수프

눈썹뼈를 지켜내는 시간

라이크스 미술관에서

D-6

편두

감춰진 시간

두통

삶에 대한 예의

D-5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

무당의 집

뒤늦게 알게 되는

생존의 방식

D-4

들끓는 자들

메꾸지 못할 구멍

진짜 여행자처럼

아름답고 푸른 두나강

D-3

단조로운 노래, 단순한 춤

끊어버리지 않고는 풀 수 없는

쉽지 않은 만남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D-2

귀한 부패

혼란

단순하지 않은 가출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시간

D-1

지우개 가루 눈물

이게 아닌데

나는 나다

D-0

두 세상의 힘겨루기

‘혼자’를 추슬러

해설 고종석

투란의 추억, 또는 움직이는 영혼을 위한 송가

작가의 말

내 마음에 드는 ‘나’

아일랜드 시인 W.B.예이츠이 묘비에 새겨져 있는 시구이다.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삶에, 죽음에.

말 탄 이여, 지나가라!

읽는 이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르지만, 달리기에 급급한 말 탄 이가, 즉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삶과 죽음을 허투루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경고하는 내용이라고도 하고, 삶과 죽음이 별것 없으니 제 할 일이나 충실히 하라고 조언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happyreadr인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차가운 눈은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삶을 살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자'라고 하면서 인생을 막 살지 말고, 제대로 삶을 즐기면서 죽음도 기꺼이 제대로 마주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심아진 저자는 뛰어난 언어의 마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문장들을 구현해놓고 독자를 유혹시키는 마법을 부려놓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양한 문장을 마주하면서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특히, ' 두 사람 사이에 꼬리를 퇴화시킨 동물과 진화시킨 동물만큼이나 복잡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는 결코 바벨탑이 무너진 후의 소통불능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문장만 보아도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이외에 다양한 문장들이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읽게 되니 많은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제가 직접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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