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필립은 별안간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그냥 쓰고 싶다고 한다. 글쓰기라고는 고등학교 때 과제로 작성했던 소설 감상 에세이가 전부야. 그것도 친구들이랑 구글링해서 나온 내용을 적당히 짜깁기했던 글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소설이라니. 읽은 소설이라고는 문학 시간에 다룬 <위대한 개츠비>나 <호밀밭의 파수꾼>,<주홍 글씨>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은 읽었다는 행위 자체만 생각나지 지금으로선 어떤 인물이 나왔고 어떤 내용으로 전개가 되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했다.
나도 글을 쓰고 싶어 책을 읽어 보기도 하고 손으로 써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글쓰기가 부족함을 직감적으로 안다. 근데 뭘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때가 매 순간이다. 그냥 내 생각을 일기처럼 적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단순히 즐거움으로 책을 읽기만 했던 것이다. 필립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무척이나 이해가 되는 장면이었다.
●최고의 소설 찾기
소설을 쓰려면 먼저 방법을 알아야 하기에
머릿속이 새하얘진 필립은 구글링을 시작했다.
그가 검색한 내용은 '소설을 쓰는 방법'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려면 아주 멋진 소설을 읽어봐야지 하면서 검색창에 '최고','소설','목록','끝내주는','문학','훌륭한','21세기'등의 키워드를 이리저리 조합하여 결론에 다다랐고 찾았다.
《666, 페스트리카Festrica》 는 포스트모던 미스터리이고, 음모론적 소설이며 실험적인 SF 소설이고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책이며 2000년대를 정의하는 10권의 책 중 하나이고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을 비롯해 다수의 수상 이력이 있고, 검색하면 할수록 점점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었고 다음날 필립은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찾을 설레임 가득 안고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하면서 계속 검색했다. 독일 작가이고 마리아너 융게 2002년 독일에서 처음 발간. 2001년, 48세 젊은 나이에 간부전으로 사망. 유고작이고 미완성작이었다. 미국에서 2006년 영어번역으로 출간 도서상, 문학상,소설상을 휩쓸었다. 총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 이 소설은 동유럽의 페스트리카라는 가상의 국가를 무대로 삼았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성 연쇄 살인, 여성 살해해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최고의 소설을 구글링해서 찾고 읽어 보겠 다는 호기심을 잔뜩 품은 채 천천히 책 속으로 빠져드는 필립의 순수함이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 속에 세상의 궁금함을 알아가는 여정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오마주 되는 거 같아서 마냥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냥 쓰자도 아니고, 최고의 소설이라는 제일 어려운 분야를 먼저 독파하고 글을 쓰겠다는 필립의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방과 표절
서점에서 《666, 페스트리카 Festrica 》를 찾지 못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잠깐 들른 펍에서
로돌포 존스를 만나 글쓰기에 관한 얘기가 시작되었다. 글쓰기로 먹고사는 존스는 일주일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읽고 쓰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고파 펍에 온다고 한다. 로돌포는 갑자기 글쓰기에서 모방과 표절이 어떻게 다른지 질문을 하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방과 표절은 굉장히 달라요. 비슷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방은 아이디어를 슬쩍 가져오거나 문체나 분위기에 영향을 받거나 배경이나 설정을 적절히 변주해서 쓰는 걸 말한다. 모방은 다른 작가의 책을 읽는 작가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모든 작가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표절은 간단히 말하자면 컨트롤 C와 컨트롤 V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쓴, 맘에 들거나 인상적인 문장을 복사해서, 자신의 글에 그대로 갖다 붙인다. 그 어떤 인용부호나 그 어떤 코멘트도 첨부하지 않은 채로. 표절 작가들이 무시무시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했던 일을 잊어버림으로써 망각의 바다에 빠트리는 것이다. 자신이 베꼈다는 행위 자체를 기억 속에서 완벽하게 삭제해 버리는 것이다.
글을 써야 한다면 모름지기 많이 읽어야 글을 쓸 수 있다. 다독을 하다 보면 인용도 하고 변형을 해서 쓸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모방도 하고 얼떨결에 표절도 하게 된다. 하지만 모방과 표절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나중에 생길 분쟁에서 충분히 소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창작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필립은 이미 글을 쓰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배웠기에 준비가 조금씩 되어가는 기분일 거다.
●독서 모임
"필립이 레스토랑에서 일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는데, 소설을 좋아해서 소설을 쓰려고 하다니, 필립이야말로 대단해요." 올리비아가 칭찬했다. 올리비아가 융게의 작품에 대해서 자전적인 요소가 담긴 《격동하는 대륙》이나 《유럽의 어둠》을 읽어 보면 자전적 이야기에 SF 적 상상력을 가미하는 테크닉이 너무 훌륭하고 번역된 문장임에도 산문을 읽는 맛을 제대로 만 끼 할 수 있다고 추천해 줬다. 올리비아는 책에 대해 신나게 얘기하다가 독서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필립은, 자신은 아직 누군가와 감상을 공유할 만큼 독서 경험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올리비아는 독서 경험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책을 읽고 이상한 부분에 대해 얘기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고, 소설 감상에는 정답이 없으니 상관이 없다고 말해줬다. 얼떨결에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고, 독서 모임도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한 말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물론 독서 모임에 나가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일을 그만뒀다고 지껄인 이유가 뭘까 하면서 자책도 한다.
필립도 그냥 나처럼 뭔가 시도를 하지만 어려워서 무섭고 겁나서 뒷걸음질 하는 순수한 청년이다. 문득 시도를 하기 위해 먼저 알려 놓고 후회를 하는 모습도 나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지 않아서 공감이 되기도 했다. 나 역시 책을 읽겠다고 아침마다 sns에 인증 시간과 책을 올리는 행동을 하면서도 나 자신은 별로 발전하지 않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고, 괜히 시도했나 하면서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나씩 또 시도했더니 점점 하나씩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면서 발전하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666, 페스트 리카》를 읽기 시작
필립은 드디어 《666, 페스트리카》 를 손에 넣었고,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기차의 차창 밖으로 사라지는 풍경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읽고 사라지고 읽고 사라지고 반복 속에서, 필립은 걸핏하면 졸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수십 번 , 어쩌면 백 번 이상 졸았는지도 모른다. 찾아오는 졸음을 무릅쓰고 결코 소설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3주 걸쳐 다 읽었다. 하지만 책에 담긴 메시지나 소설의 의미도 기억나질 않는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내용이 없다는 것일 깨닫는 데는 순식간이었다. 책을 다 읽은 날 밤 길몽을 꾸는 필립 ......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지만 여전히 눈물을 흘린다. 그동안 봐왔던 영화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도 8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고 기한 내에 글을 써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너무 힘들고 읽어도 머릿속에 남는 게 없어 힘들었던 적이 있어서 필립이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반면에 800 페이지가 넘어도 이해가 되면서 술술 넘어가는 책은 확실히 내가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었고 그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훨씬 읽기가 수월했다. 필립이《 666, 페스트리카》를 읽고, 꿈을 꾸며 SF에 빠져드는 모습이 영화<인셉션 >,<매트릭스>,<스파이더맨 >,<다크>를 보면서 분명히 봤는데, 하면서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면서 할릴 없이 중얼거리며 이 공간에서 같이 보았던 마리아 히토미만 떠올린다고 중얼거린다. 이상하게도 책이나 영화를 보면 항상 누군가 옆에 있던 기억이 더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필립도 나도 그렇다!!
●필립의 연인 마리아 히토미
6개 월을 떨어져 있다가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익숙한 마리아가 필립을 만나러 왔다. 사랑을 나누는 것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어색하지 않은 연인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미리에게 말했고, 마리아는 필립이 책에 관심이 많은 것에 놀랐고, 본인이 아는 것을 필립에게 알려주는 멋진 연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일본으로 가봐야 하는 마리아는 일본계 부모님이시지만 미국에서 계속 사신 어머니와 살고, 아버지는 이혼 후에 일본으로 돌아가서 작가를 하시다가 마흔아홉의 나이에 요절을 하셨다.
자살을 하셨다. 일본에서 젊은 작가가 요절을 하는 것은 작품을 성공시키는 요인과 동시 명성도 된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이가 49세면 젊은 나이도 아니고 명성 할만한 소설을 쓰신 것도 아닌데, 왜 죽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식어가는 사랑의 고통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어떤 식으로든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
일본에 와서 만난 아버지 자식도 아니고, 나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새어머니의 아들 겐조를 만나고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며 같은 일본인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겐조가 남동생이 아니라 남자로서 좋아져서 더 이상 필립을 만날 수 없고, 일방적으로 사랑을 끝낼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는 마리아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녀의 사랑을 응원하고 앞날에 행운을 빌어준다고 말한 필립이 가엽기도 하면서 멋지다고 생각한다.
"네가 쓰려고 하는 소설,
꼭 완성할 수 있길 바랄게.
그 동안 고마웠어. 안녕."
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
필립은 독서 모임에서 새로운 상대를 만났고, 그녀와 두 번째 모임 이후 부쩍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횟수가 늘면서 점점 가까워짐을 느끼고 있었다. 필립이 먼저 묘지에 간다며 캐런에게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승낙을 했다. 필립은 같이 가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필립이 독서 모임을 통해 다양한 책을 읽으며 글쓰기를 배우며 멋진 소설을 쓸 거라는 기대 가 되는 정말 한여름 밤의 설렘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이불 속에서 필립이 되어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봤던 로맨스 같은 소설이면서도 한 사람이 일이든 사랑이든 주저하지 않고 시도하고 다가가면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있는 필립의 멋진 성장 이야기를 즐겁게 읽었다.
<서평단 당첨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제가 직접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