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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탄생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5월
평점 :
#그리스도의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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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애> 이후에 엔도 슈사쿠가 쓴 책입니다. 예수의 사후,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엔도 슈사쿠만의 시선으로 그려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궁금했던, 인간 예수의 죽음 이후에 평범한 이들이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죽음도 불사하는, 강한 신앙심으로 무장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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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예수의 죽음 이후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 간의 갈등과 지도자였던 바오로와 베드로의 죽음, 그리고 예루살렘이 짓밟혔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수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 유다교의 관습 등을 같이 짚어주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서 저자에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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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편인 <예수의 불가사의, 불가사의한 예수> 페이지를 무척 재밌게 읽었는데요. 예수의 죽음 이후, 바오로와 베드로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이어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마저 잿더미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다시 되짚으면서 정리해 줘서 좋았어요. 예수는 무력했습니다. 죽음을 맞기 이전에는 불가사의한 능력도 있었으나, 제자들에게마저 배신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비참한 최후를 마치지요. 그 과정에서 하느님은 로마의 총독에게 어떠한 징벌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예수를 놓지 못합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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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나약함으로 누군가를 배신했을 경우, 일반적으로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하나는 자기변명을 하는 것이다. 이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며 배신한 상대를 부정하거나 증오한다. (중략) 또 다른 하나는 변절자가 변절의 대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다른 세계로 도피하는 방법이다. 한때 학생 시절에는 당에 속했으나, 당국의 추궁을 받고 이탈한 후에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와 무관한 예술 지상주의에서 삶의 터전을 발견한 일본의 문학가들이 이러한 경우였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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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비교적 쉬운(?) 첫 번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까닭에 대해서 저자는 당시 유대교의 '하느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짚어줍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생전의 예수를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을 알려줘서 이해가 갔어요. 제자들이 이런 심리적인 방어를 극복하고 신앙인으로 거듭난 건 예수를 직접 겪었던 제자들만이 알고 있던 그 무언가-저자는 X라고 표현합니다-가 있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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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가르친 것은 '사랑의 하느님'이지만 사랑 그 자체는 유다교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제자들에게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유다교의 하느님은 배타적인 민족 신이자 자신을 배신하는 이를 벌하는 '분노의 신', '심판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p.258
하느님 이외의 어떠한 것도 섬기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하고 있던 유다지방에서 어떤 사람이 신격화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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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골고타 언덕에서 그러했듯이 구원의 손을 뻗치지 않았고,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그들은 해답을 얻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아니었다. 제자들은 다시 생각해야 했다. 하느님은 왜 침묵하였는지, 예수의 처참한 죽음, 그리고 야고보, 베드로, 바오로의 처참한 죽음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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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겠지요.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예수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참 불가사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예수를 놓을 수 없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부활이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합리적인 이해로는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불가사의한 무언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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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고독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지한 자세로 대하며 내면과 마주한다면, 자신의 영혼이 반드시 어떤 존재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에 실망한 사람은 배신하지 않을 존재를 찾는다. 나의 슬픔을 헤아려 줄 이가 없어 절망하고 있는 이는 자신을 이해해 줄 그 누군가를 찾는다. 이는 감상도 어리광도 아니다. 다른 이에 대한 인간의 조건이다.
때문에 인간의 존재와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인간은 영원한 동반자를 계속 찾을 것이다. 예수는 언제나 인간의 이러한 간절한 기대에 답했다.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죄를 범했고, 그리스도교 역시 때로는 과오를 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계속 예수를 찾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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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으면서 저 또한 냉담했던 시기가 있었음을 떠올렸습니다. 결국은 되돌아오게 되더라고요.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고, 받아들여주는 누군가를 찾아서 되돌아오는 건 엔도 슈사쿠의 말처럼, '인간의 조건'이기 때문이기도 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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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감사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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