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스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불안해졌다. 시가지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답답하고 불안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낯선 얼굴들, 뻐기는 듯이 높게 치솟은 휘황찬란한 건물들,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는 길, 철로 마차 그리고 길거리의 소음이 한스를 겁에 질리게 했을 뿐 아니라 괴롭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숙모 댁에 묵기로 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들, 숙모의 친절함과 수다스러움, 그냥 무턱대고 앉아 있어야 하는 분위기,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쉬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배려, 이러한 것들이 어린 소년을 완전히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다시피 했다.-26쪽
한스는 어설프고 당혹스러운 느낌으로 방 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눈에 익지 않은 주위의 환경, 숙모가 입고 있는 도시풍의 옷차림새, 벽에 걸려 있는 큰 무늬의 양탄자, 탁상시계,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시끌벅적한 거리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벌써 오래전에 집을 떠나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힘들게 배운 지식을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26쪽
다른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학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예술이라고 불리울 만한 신학이 있고, 학문이라고 불리울 만한 신학이 있다. 혹은 적어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신학말이다. 그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과학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오래된 포도주를 언제나 새로운 술 포대에 담는다. 새로운 술 포대에 담기 때문에 전통적인 가치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예술가들은 얼핏 보기에 그릇된 주장들을 태연스럽게 고집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비평과 창조, 학문과 예술 사이의 불평등한 오랜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과학은 별다른 도움 없이 언제나 정당성을 인정받아 왔다. 언제나처럼 예술은 믿음과 사랑, 위로와 아름다움, 그리고 영원에 대한 예감의 씨앗을 뿌려왔다. 또한 풍요로운 토양을 새로이 발견하여 온 것이다. 그것은 삶이 죽음보다 강하고, 믿음이 의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62쪽
주 시험에 대한 불안감과 승리감으로 인해 사라져버렸던 야망이 다시금 살아나서는 한스에게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동시에 지난 몇 달 사이에 자주 느껴왔던 형용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이 그의 머릿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통이 아니었다. 빠른 맥박과 흥분을 동반한 승리에 대한 조급함이었다. 또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억제되지 못한 욕망이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어김없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섬세한 고열이 지속되며 독서와 학습의 성취는 폭풍처럼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한스는 예전에 15분 가량 걸리던 <크세노폰>의 가장 어려운 문장들을 이제는 손쉽게 읽을 수 있었다. 사전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고도 날카로운 이해력을 십분 발휘하여 무척이나 난해한 글들을 척척 읽어 내려갔다.-70~71쪽
두 소년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마 이 순간에 처음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본 것 같았다. 젊음이 넘치는 매끄러운 생김새 뒤에 깃들여 있을지도 모를, 특유의 성향을 지닌 남다른 인간적인 생명과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영혼을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헤르만 하일너는 천천히 팔을 펴 한스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러고는 서로의 얼굴이 거의 닿을 만큼 한스를 끌어당겼다. 한스는 갑자기 상대방의 입술이 자기의 입에 닿는 느낌 때문에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112쪽
학교 선생은 자기가 맡은 반에 한 명의 천재보다는 차라리 여러 명의 멍청이들이 들어오기를 바라게 마련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선생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절제한 인간이 아닌, 라틴어나 산수에 뛰어나고, 성실하며 정직한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더 상대방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게 되는가! 선생이 학생 때문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학생이 선생 때문인가! 그리고 누가 더 상대방을 억누르고, 괴롭히는가! 또한 누가 상대방의 인생과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더럽히는가! 이러한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마다 누구나 분노와 수치를 느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기서 우리가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142쪽
<그렇다면 난 정말이지 짐작할 수 없네. 어딘가에 문제가 있긴 있을 텐데 말야. 자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주겠나?>
한스는 권력자가 내민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얹어놓았다. 교장 선생은 그를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146쪽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한스는 정신을 집중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그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책들은 그림자처럼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수업 시간에 히브리어의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수업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예습을 시작해야 했다. 구체적인 관조의 순간들이 자주 나타나기도 했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 안에 서술된 사물들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물보다도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치고, 현실에 가까웠다. 한스는 자신의 기억력이 전혀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느슨해지고,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따금 낡은 기억들이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그를 엄습하기도 했다. 그럴 대마다 한스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었다.-161쪽
이렇듯 고통과 고독에 내맡겨진 병든 소년 한스에게 위로자의 가면을 쓴 또 다른 유령이 다가왔다. 그리고 점차 그와 친숙하게 되어 급기야는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다름아닌 죽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권총을 구한다거나 숲속 어딘가에 밧줄을 매단다거나 하는 일은 물론 어렵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거의 매일같이 한스의 산책길을 따라다녔다. 한스는 조용하고 외딴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끝에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죽음의 보금자리로 정해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 찾아갔다. 머지 않아 사람들이 여기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상상을 하며 이상야릇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181쪽
한스는 갑작스레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엠마가 빨리 가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를 뜰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웃기도 하고, 재잘거리기도 하고, 어떤 농담이라도 재치있게 슬쩍 받아넘기는 것이었다. 한스는 부끄러운 나머지 그만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당신>이라는 존칭을 해야 하는 젊은 아가씨들과 사귄다는 것이 그에게는 어쩐지 끔찍하게 여겨졌다. 더군다나 이 아가씨는 지나치게 활달한 수다쟁이였다. 더욱이 그녀는 한스가 옆에 있거나, 그가 수줍어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당황한 나머지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처럼 촉수를 움츠리고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짐짓 싫증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방금 누군가가 죽기라도 한 듯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207쪽
독일 낭만주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헤세는 특히 고독과 허무를 주제로 한 서정시에서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물론 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도 예외는 아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서전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그의 분신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한스처럼 <수레바퀴 아래서> 힘든 삶의 여정을 밟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이섭, <작품 해설> 中-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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