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 공포의 정치학, 권력의 심리학, 개정판 문제적 인간 4
로버트 서비스 지음, 윤길순 옮김 / 교양인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역사학자 홉스봄은 20세기를 '짧은(단기)20세기'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는 20세기는 1917년에 시작해서 1991년에 끝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19세기는 '긴(장기) 19세기'다. 19세기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시작하여 1914년의 1차세계대전으로 끝이 난다고 본다. 유럽은 산업혁명과 민주주의혁명을 통해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여 전통적인 강국이었던 중국과 인도, 이슬람을 비롯한 문명들을 철저히 짓밟는다. 그래서 19세기는 유럽의 세기이면서 자본주의 문명의 절정이다. 그러나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자멸하고 만다. 이 무덤 위에 새로 생겨난 체제가 바로 현실사회주의다. 사회주의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서 현실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한다. 20세기는 볼세비키 혁명을 통해서 태어난 공산주의 체제가 산사태처럼 무너져내리면서 끝났다.

 

20세기를 만들어낸 혁명을 이끌고간 지도자는 레닌이다. 러시아혁명은 레닌의 지도력이 없었다면 지속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어쩌면 파리코뮌처럼 몇 년만에 무너졌을 것을 가능성이 크다. 레닌이 만들어낸 체제를 완성한 사람은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레닌이 죽고 난 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비에트체제를 지킨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책은 영국의 역사학자인 로버트 서비스의 러시아 혁명사 3부작의 두번째 작품이다. 서비스는 <레닌>을 2000년에, <스탈린>을 2004년에, <트로츠키>를 2009년에 펴냈다. 스탈린은 레닌과 스탈린에 비해서 문필력과 창의력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뛰어난 행정능력과 공포정치로 소련을 역사 속에서 살아남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 체제의 생존이 이후의 역사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끼치지만은 않았고, 지속불가능한 체제였다는 점에서 결함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레닌이 혁명드라마의 1부인 러시아혁명사의 주인공이었다면, 스탈린은 러시아혁명 2부인 소련과 세계공산주의 체제의 전반기를 이끌고 간 주인공이었다고 볼 수 있다. 2부는 1부보다 더 참혹하다. 러시아혁명은  1차세계대전의 부산물이었다. 그리고 그 혁명은 러시아에 고립됨으로써 고사할 수도 있었다. 스탈린은 고립된 사회주의 국가을 지키기 위해서 무자비하게 통치한다. 반대자들은 가차없이 숙청한다.  때로는 사회주의혁명의 원칙을 버리고 히틀러와 밀약을 맺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그는 소련을 근대화된 국가로 이끈다. 2차세계대전의 전환기를 맞이한 것도 소련의 희생과 투쟁때문이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없었다면 독일은 유럽과 아시아를 호령했을 것이다. 소련인은 2600만명이 죽었다. 부상자와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도 몇 백만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희생을 치른 댓가였다. 2차세계대전의 승리를 통해서 스탈린과 국제공산주의 체제는 파시즘을 물리친 투사라는 명예를 얻었다. 스탈린은 죽을 때까지 국제적으로는 큰 명성을 얻었다.

 

스탈린의 명성이 추락한 것은 1956년에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때문이었다. 스탈린의 악행이 외부세계로 알려진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스탈린이 1930년대 후반에 상상을 초월한 공포정치의 실체가 조금 알려졌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로써 스탈린의 도덕적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져내렸다. 1936년부터 실시한 대숙청은 수십만의 반대세력을 죽이고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소련은 이른바 '속삭이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절대군주보다 더한 절대지도자의 눈치를 보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대숙청의 시기에 스탈린은 연해주의 한국인 20여만명을 중앙아시아로 전부 이주시켰다. 10% 가까운 사람들이 이동 중에 죽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체로키족의 '눈물의 길'이 있다. 이렇듯 스탈린은 소수민족에게도 무자비했다.

 

비고츠키 심리학 공부를 하다보면 소련의 1920년대는 활력이 넘치는 사회였다고 한다. 이런 자발성과 창의성, 활력을 죽여버린 것이 스탈린의 통치였다. 그는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나라를 다스렸을까? 결국에 소련이 스탈린의 통치 말기에 다다른 지점은 스탈린 1인독재체제였다. 스탈린이 정치를 위해서 참고한 사람은 레닌 뿐만이 아니었다. 레닌 역시 민주주의와 다양성의 지지자는 아니었다. 공산당 일당독재를 통해서 사회주의적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강력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다양성마저 철저히 압살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몰고갔다. 스탈린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주석을 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또한 러시아의 절대군주들인 표트르 대제와 이반뇌제 같은 이들을 연구했다. 아마 스스로의 역할을 그렇게 부여했을 수도 있겠다. 짜르체제가 결국 스스로의 한계에 의해서 무너져내렸듯이 소련도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서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절대주의 체제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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