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1
그림 형제 글, 펠릭스 호프만 그림, 김재혁 옮김 / 비룡소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책 뒤 소개글을 보니 그림형제는 형인 야고프가 1785년에 태어나서 1859년에 죽었고, 동생인 빌헬름은 1786년에 태어나서 1859년에 죽었다고 나와있다. 이네들이 활약한 시대는 19세기 전반기인 셈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 함께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이 유럽을 혁명의 시대로 몰아가던 그런 시절에 활동한 것이다. 그림형제는 당대의 약소국인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들이 시대적인 과제로 인식한 것은 독일민족의 부활과 통합이었다. 그들이 독일의 민담과 전설을 수집해서 책으로 펴낸 것은 그런 일을 통해서 독일민족의 정신을 부흥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따지자면 그들은 독일민족주의자인 셈이다. 그들이 펴낸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은 200년 가까운 세월을 흐르면서 세계 어린이들이 읽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림동화는 안데르센 동화나 이솝우화와 함께 어린 시절의 필독서처럼 여겨진다. 내용을 알고보면 그림동화는 무섭고 황당한 내용이 많다. 이런 황당함은 안데르센이나 이솝우화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도 많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어린아이의 교육상 필요하지 않은 장면은 없애버리고 순화된 형태로 동화를 들려주려는 부모들도 많고, 거기에 부합하여 그런 종류의 책을 펴내는 출판사들도 많다.

펠릭스 호프만은 그림형제의 동화에 충실하게 그림을 그려냈다. 그는 스위스에서 출생했고 교육은 독일에서 받았다. 스위스가 사실상 독일문화권이라고 본다면 그는 그림형제의 동화를 그림으로 그릴 충분한 문화적인 자격을 부여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11년에 태어나서 1975년에 죽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1957년 판이라고 나와있다. 그림책으로서 5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남아서 한국어로도 옮겨졌다고 한다면 그림에 생명력이 있는 것일 거다. 그림책 안내서들에서도 호프만의 그림책들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평가들이 나와있기도 하다. 그런 유명세에 의존하지 않고도 우리는 이 그림책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보면 금방 그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아이들은 이 그림책의 원작인 늑대와 아기염소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우리나라 동화에서도 '해와달이 된 오누이'는 얼마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인가.

언뜻보면 이 그림책의 그림은 거칠어보인다. 빛깔도 어둡고 칙칙한 편이다. 만약 이 책을 이렇게 양장으로 잘 제본하지 않고, 비룡소출판사에서 내지 않았다면 그 가치가 좀 떨어졌을 것 같다. 막상 책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는 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익숙한 그림을 찾는 사람의 태도가 여기서도 나온다. 그렇지만 책꽂이에 두고 여러번 책을 읽어보았더니 곧 그림에 익숙해지고, 이 그림의 독특한 맛도 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중에 나와있는 수없는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 염소>나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양>들에 비해서 보면 이 책의 그림은 독특하다. 정말 염소 같은 느낌이 든다. 늑대도 너무 흉측하거나 너무 귀엽지 않고 실감이 나서 좋다. 석판화로 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엄마 염소는 숲 속에서 혼자 산다. 아기들이 일곱이나 있지만 밖에 일하러 나갈 때는 좀 봐달라고 부탁할 이웃조차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한다. 늑대는 변장을 잘하니까 조심하라고. 엄마가 아니면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아기염소들은 "엄마, 우리 모두 조심할게요. 걱정 하지 말고 어서 다녀오세요!"하고 엄마를 안심시킨다. 아기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열쇠로 잠긴 대문뿐이다. 짐을 담을 바구니를 메고 집을 나서는 엄마의 모습이 아주 작게 그려져있다. 우리전래동화인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는 이렇게 일하다가 오는 엄마를 호랑이는 잡아먹고 만다. 호랑이와 늑대의 차이인가? 엄마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 늑대가 등장한다. 늑대의 목적은 하나다. 아기염소들을 모두 잡아먹어서 자기의 식욕을 만족시키는 것. 아기들은 잘 속지 않는다. 늑대는 목소리를 변조시키기 위해서 잡화상에서 분필을 하사 사서 삼킨다. 그랬더니 목소리가 예뻐졌다고 한다. 털이 북실북실난 시커먼 발을 감추기 위해서는 밀가루 반죽과 밀가루를 이용한다. 빵집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고 방앗간에 밀가루를 얻으러 가는 늑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재미있다. 방앗간 집 문 아래에는 고양이가 드나들고 있고, 밀가루 포대 주위에는 참새들이 서성대고 있다.

늑대는 아기염소들을 완벽하게 속이고 집안으로 쳐들어온다. 아기염소 일곱마리는 제각각 집안 구석구석에 숨는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는 엄마로 변장하고 들어온 호랑이는 오누이에게 밥을 해주겠다고 하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림동화에서는 문을 열자마자 달려드는데 우리전래동화에서는 왜 그랬을까? 오누이는 감나무 위로 올라가서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도끼로 감나무를 찍고 올라오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찰나에 오누이가 의지하는 것은 하느님이다. "하느님, 하느님. 저희를 살리시려거든 튼튼한 밧줄을 내려주시고, 죽이시려거든 썩은 밧줄을 내려주세요." 이런 기도로 오누이는 산다. 호랑이도 똑같은 기도를 한다. 호랑이의 기도에도 하늘은 응답한다. 호랑이가 탄 밧줄은 감나무 위에서 끊어지지 않고 하늘 중간에서 끊어지고, 호랑이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천벌을 받은 셈이다. 그림형제의 동화에서는 일곱째 염소가 살아남는다. 잘 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늑대는 아기염소들을 씹어먹지 않고 꿀꺽 통째로 삼킨다. 그래놓고 늑대는 나무그늘 밑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호프만이 그린 늑대의 잠자는 모습은 해학적이다. 팔을 머리 위로 쭉 뻗고 자고 있다. 엄마염소가 풀밭에서 늑대를 발견했을 때 모습이나, 가위로 배를 잘라냈을 때 모습, 돌멩이를 넣고 배를 다시 꿰맬 때 모습이 똑같다. 그만큼 늑대는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어쩌면 엄마염소가 정말 조심해서 그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술로 치자면 완벽한 수술을 한 셈이다. 낮잠자고 일어나서 배가 무거웠던 늑대는 비틀거리며 우물을 향해 간다. 배에 바느질 자국이 있는 불룩한 모습으로 독자를 향해 있는 늑대의 모습과 그 꼴을 창문으로 쳐다보고 있는 염소가족의 모습이 재미있다. 늑대는 마치 밤새 술이라도 마신 주정뱅이 같은 모습이다.

늑대가 우물에 빠져죽자 염소가족은 "늑대가 죽었다! 늑대가 죽었다!"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얼마나 통쾌할 것인가. 압제자의 압박을 이겨내고 그들의 지혜와 용기로 늑대를 없애버렸으니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는 아기염소 일곱마리가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엄마 염소는 그 평화로운 광경을 쳐다보고 있다. 창문너머에는 둥그런 보름달이 떠있다. 이제 염소가족은 편하게 쉴 수 있다. 이 안식은 오로지 그들 가족의 힘에 의한 것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염소 가족은 앞으로 닥치는 어떤 난관도 이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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