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지혈사 소명출판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107
박은식 지음, 김도형 옮김 / 소명출판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박은식은 1859년 황해도 황주 태생이다. 학문에 입문할 때는 골수 주자학자로 시작했지만, 죽을 무렵에는 양명학에 심취해있었다. 그는 1925년에 망명지 중국 땅에서 죽었다. 그는 교육자, 언론인, 혁명가, 역사학자로서 당대에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다. 오늘날에는 단재 신채호와 더불어 민족주의 역사학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역사학자로 추앙된다. 그가 쓴 대표적인 역사책은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있다.

 

이 책은 <한국통사>의 속편이다. 박은식은 1915년 상해에서 <한국통사>를 펴낼 때 후기에 독립운동사와 광복사에 대한 언급을 한 바 있다. 결국 그는 1920년에 <한국독립운동사>를 서술한다. 그런데 <한국통사>가 아픈 역사인 것처럼,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피의 역사다. 그래서 중국의 언론인 경정성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통사는 눈물이오, 독립운동사는 피라. 전날의 눈물이 이미 변하여 두 해에 걸친 혁명의 피가 되고, 오늘의 피는 다시 온 세상의 동정어린 눈물을 널리 얻게 될 것이다(26).”

 

이 책은 상편, 하편, 부록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은 3.1운동 이전의 역사를 다룬다. 이야기는 갑신정변에서 시작하여 동학농민전쟁, 민비시해, 독립협회, 을사늑약, 군대해산, 의병전쟁, 안중근 의거와 민영환의 순절, 105인 사건 등을 다룬다. 총독부의 조선통치에 대해서는 행정, 사법, 헌병경찰, 동양척식회사, 종교정책, 교육정책, 기업정책 등을 자세히 서술한다.

 

하편은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시작된 식민지 세계체제의 변화에 대해서 다룬다. 세계대전은 러시아혁명과 민족자결주의라는 결과물을 가져온다. 조선인민은 3.1운동과 파리강화회의 청원운동, 만주와 노령의 독립전쟁 등으로 독립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몸부림친다. 일제는 여기에 야만적인 살육과 파괴, 고문 등으로 대처하다가 결국에는 한발 물러서 문화통치라는 새로운 식민지정책을 준비한다.

 

부록은 미국 선교사와 언론인, 중국인들의 시각, 미국상원 한국사정보고서 등 당대에 가장 최신의 조선에 대한 정보들을 원문으로 싣고 있다. 부록의 분량도 상당하다. China Press의 페퍼 기자가 쓴 사이토 조선총독 회견도 인상깊다.

 

전작인 <한국통사>는 대원군의 집권부터 시작해서 한일합방까지 진행된 조선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에 비해서 이 책은 의병투쟁과 일본의 조선통치, 3.1운동의 전개과정과 일제의 야수와 같은 탄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의병전쟁은 민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시행된 1895년부터 대규모로 진행된다. 그러나 일본군대의 조직적인 탄압에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의병전쟁이 더욱 큰 규모로 일어난 것은 1907년의 군대해산과 고종퇴위부터이다. 비록 규모는 만 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대한제국의 정규군대였던만큼 군인들이 항일의병에 참여한 것은 전쟁의 양상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의병전쟁은 일제의 집요한 탄압에 밀려서 결국 1915년 무렵에 국내에서는 열기가 수그러들게 된다. 1915년 북한지역에서 체포된 의병장 채응언의 사진이 이러한 의병전쟁의 종말을 상징한다. 남은 의병들은 결국 만주와 러시아영토로 이동해서 독립투쟁을 계속하게 된다.

 

1910년 한일합방이후 조선인은 완전히 일본에 동화되었다고 믿어졌다. 일본의 총독정치는 수천 명의 헌병경찰이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는 말 그대로 군사적 강압통치였다. 이러한 식민통치의 얼음장을 깨뜨린 것은 결국 외부로부터 왔다. 1917117일에 일어난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전쟁과 식민지체제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켰다. 그리고 1년 뒤 191811111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1919118일부터 시작된 파리강화회의는 전쟁의 뒤처리를 하는 협상이었다. 여기에서 미국대통령 윌슨이 내건 민족자결주의라는 원칙은 약소민족과 식민지인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우리 민족운동사의 빛나는 신기원들이 만들어진다. 1919년과 1920년에 우리 민족은 혁명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냈다.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대표를 파견하기 위한 만주와 연해주, 미주 동포들의 투쟁은 결국 김규식 일행을 프랑스에 보내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들의 협상을 뒷받침해주기 위한 국내동포들의 시위와 항쟁은 3.1운동이라는 거대한 시위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독립군들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라는 독립전쟁사의 전설을 세운다. 

 

박은식의 말처럼 3.1운동은 독립운동사와 세계혁명사의 신기원을 만들어냈다. 맨몸으로 일제의 헌병경찰에 맞선 한국인의 기개는 일본과 중국인을 비롯한 전세계의 인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민족이 10년 만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수 개월간 지속된 시위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의 분수령이 된 4.195.18, 6월 항쟁, 촛불혁명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3.1운동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세계사에 현대적인 의미를 가진 민족으로 다시 태어난 사건이었다. 3.1운동이 있어서 우리는 당당하게 독립된 국가를 요구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다.

 

박은식은 이 책의 상당부분을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서술하는데 할애한다. 식민지인이었던 우리가 문화적인 방식으로 독립을 요구했다면, 일제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독립을 탄압했다. 헌병경찰을 이용해서 평화시위에 총과 칼, 갈고리, 말 등을 사용했다. 저들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야만적인 행위들을 저질렀다.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갇힌다. 감옥에서도 온갖 폭력과 만행을 저질러서 인간을 황폐하게 만든다. 수원에서는 교회안에 사람들을 집어넣어놓고 불을 지르고 죽인다.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야수의 군율을 지닌 군대는 그렇게 되는 것일까? 우리도 야만적인 군사독재의 시절에 그와 꼭 같은 국가폭력을 경험했다. 식민지의 폭력은 해방후의 군대와 경찰에 청산되지 않고 그대로 전승된 것일까? 국가는 인민을 자기 권력의 원천이며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짓밟아도 되는 존재라고 본 것일까?

 

박은식은 독립운동이 피의 역사임을 증언한다. 그리고 거듭해서 중국이 제 2의 조선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집어삼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하는 길이 되리라는 것도 예상한다. 현실의 역사는 그대로 진행된다. 일제는 만주를 집어삼키고 중국도 먹으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아시아와 태평양을 거대한 전쟁터로 만들어 버린다. 수많은 파괴와 살육의 결과로 스스로도 파멸한다. 동아시아를 휩쓴 거대한 전쟁기계는 이제 멈춘 것일까? 전쟁의 원동력이 되었던 일본은 전쟁광들을 버리고 전쟁찬양을 내려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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