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신동준 지음 / 살림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조선왕조 실록을 부국강병이란 테마를 가지고 집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부국을 위한 논의의 부분은 식상하기만하다.

어쩌면 그들의 많은 논의 속에 감쳐진 부국강병을 위한 치열함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보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이해할 수 없는 책이 될 것이니...나의 판단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목적했던 책의 구매 의사와 상관없는 책의 리뷰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은 꼭 한산한 연못에 앉아 아무런 준비없이 소풍을 나와 연못위 떠도는 물풀들과 바람의 장난을 보고있는 듯한 멍한 상태에 놓임을 느껴본다.

1만 8천원의 구매비용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나는 준비되지 않은 소풍을 준비하고 있는가도 모르겠다.

나름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내가 살아야 할 오늘과 내일이 과거를 재판하기 위함이 아니기에 내안의 변주곡으로 바꾸고자 열심히 내 안의 정리를 놓고 있을 뿐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역설을 통한 부국강병의 논의를 새롭게 하기 위한 타산지석의 교훈을 말하고 있을지 모르리라는 나름의 위안을 전재로........


유혈혁명이 아닌 평화적으로 왕권이 교체된 것 역시 이체롭다.
새로운 지도사상으로 자리한 성리학의 이해와 이를 발전시키는 그들의 모습과 변질되는 모습 역시 돌이켜 볼 만한 점이다.

왕권 개개인의 이해와 이러한 지도자의 한계성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조직구조의 한계를 이해 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다.


성리학의 이해에서 황당함은 아마 신권중심이냐 왕권중심이냐는 논쟁과 전제가 참 납득하기 어려움으로 다가선다. 한 사회를 이끄는 지도사상에 지도체계가 완성되지 못 한 점 역시 이체롭고, 또 지도체계는 어쩜 군약신강이란 방향으로 전제되었던 듯도 하다. 그런 이유가 어쩌면 나약한 조선이란 나라를 만드는 필연적 전제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정도전의 입지전적 노력과 이를 집행하는 혁명가와 정세가라는 두 가지 모두를 이끄는 모습이 재미난다.

태종 이방원과 하륜을 돌아 보는 것 역시 재미난다.

정도전이 신권 우위의 정치를 펼쳤다면, 하륜은 강력한 왕권으로 조직을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두사람에 나름 손을 들어준다면 하륜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어떠한 조직이든 최상의 결정권자에 힘이 없다는 가져올 불행이 기층에는 더욱 클 수 밖에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일까... 아님. 1인자의 독선을 경험해 보지 못한 만용에 근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부국강병 논의는 어쩌면 정도전과 하륜의 시대를 마감하며 책의 내용은 종결되었다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이 후의 내용은 궁정사회의 암투와 이권을 위한 치밀한 논의와 집행만이 그려지고 있다. 그 안에 저자가 말하는 한계에 대한 설명의 부연 정도가 전부이다. 세종과 정조의 닮은 꼴의 모습 상왕정치라는 왕권강화의 바탕 속에서 폭넓은 사회발전의 동력을 갖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들. 그리고 열심히 학문하는 자세를 기반하는 논의와 논쟁으로 상대를 이끄는 모습이 아마도 닮지 않았는가 싶다.

세조의 고민을 훔쳐보는 것 역시 많은 것을 배운다.
왕권의 힘없음이 곧 가장 위험한 경우로 상황판단 한 세조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민생을 위해 많은 업적을 만들이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본다.

세조이후 왕조는 어쩌면 모두 궁정사회 그 우물안에서 고민만이 계속된다.
성리학에 대해서는 알고 싶은 마음마저 들지 않을 만큼 치떨림을 느낀다.명분만이 전제되는 곳 명분의 뿌리와 끝은 모두 기득권과 당파의 이득을 위해 치장만되는 그들의 지저분한 속뇌를 모두 보여내고 있지 않은가...

중조와 인조의 모습이 그러한 극단의 모습을 잘 보여내고 있으며, 왕의 상징성만으로 꼭두각시 만드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문마저 더욱 굳게 닫게 한다.

인조... 그의 자식마저 죽음으로 내 던졌던 권력을 위한 목적앞에 비겁할 때로 비겁한 모습, 나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쇠퇴하는 명으로부터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덤비는 그 끝모를 치졸을 보며 분노하게한다.
이런 인조의 모습이 현정권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나의 감성적 접근에 기인함을 느끼지만, 쉬 지워지지 않은 것은...단순한 느낌만이 아닌 현재의 긴장고조되는 분위기에서는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왕은 곧 그 자체만으로 가장 강력한 조직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가장 강력한 조직의 이해를 연민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가 아님 부정해야 하는가 싶은 내 안의 폭풍을 만든다. 환국정치를 이끈 숙종, 탕평책을 이끈 영조, 붕당정치의 선조의 모습등... 모든 왕들의 태생적 한계성이 항상 정책운영의 가장 밑바닥 한계로 작용했던 전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의나 준비는 어디 한 줄도 없다.

실제 없었는가에 대한 알고 싶음과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가 나의 중심고민으로 이책을 읽고 있는 내내 더운 여름 숲가의 매미소리처럼 웅웅 거린다.

어쩌면 성리학이란 당시의 지도사상이 신권중심으로 편제되어지다 보니... 품을 키우는 후계교육이란 기대 할 수 없는 부분으로 덮여버린 것은 아닐까. 신하의 나라를 만들고자 열정을 다했던 많은 위정자들에게 이는 반역만큼이나 커다란 문제였으며, 숙명처럼 그 안을 살아야 하는 숱한 민초들의 눈물이 사무침을 느낀다.

궁정사회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필연으로 상왕정치를 통한 후계 양위의 문제는 환국정치 이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정치적 선택이였음을 새삼 느낀다.

민은 어쩌면 그들에게는 공기와 물이였을 것이다.

너무 가깝기에... 쉬 묵살하고, 잊고 지내는 것... 새삼 내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겠다는 다짐이 든다.

품의 말이 통할 수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이끌어질지 망막함이 눈 앞을 흐리게 한다.

어디 하나 치열한 삶을 살지 않고 헛으로 삶을 임하는 이가 있을까... 하지만, 치열한 삶이 곧 바름임을 다짐 부는 이는 몇 일까... 바름의 푯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이책을 보며 갖는 교훈이 있다면 학습에 최선을 다했던 왕만이... 바름을 가장 많이 실현했다는 점이다. 복잡하고 두꺼운 책을 통해 얻는 교훈은 어쩌면 바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 하나 일 것이다.

역사라는 테마 속에서 운명의 결정이 이러한 순간의 잘 못된 치열함에 근거함을 보며 공부라는 과제를 더욱 의미심장하게 가르쳐 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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